[사람들]
[정우] “드라마 연기, 더 파고들고 싶더라”
2008-08-19
글 : 강병진
사진 : 김진희
<스페어>의 정우

낯은 익은데, 이름은 모르겠다. 영화 <스페어>에 나오는 배우들이 죄다 그렇다. 슈트를 차려입은 다량의 오빠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정우는 그나마 전작의 모습들이 아른거리는 배우다. <짝패>에서는 안길강이 연기한 왕재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고,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는 모자란 동네청년을 연기했던 배우라면 떠올릴 수 있을는지. <스페어>로 생애 첫 주연작을 얻은 그는 “조·단역을 연기할 때보다 심적부담이 컸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다음 작품에서는 그의 이름이 조금은 더 낯익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우란 이름은 예명인가.
=원래 이름은 김정국이다. 뜻 정에 나라 국인데, 그동안 다소 센 역할들을 연기해서 이미지를 바꿔볼까 하고 지은 예명이다. 어머니가 작명소에 가서 지어오셨는데, 별 뜻은 없고 그냥 부드럽게 들리는 이름일 뿐이다. (웃음)

-<스페어>로 첫 주연작을 얻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짝패> 이후로 많은 분들이 나를 기억해주신 것 같다. 주연급 오디션을 보자는 영화가 3편 정도 있었는데, <스페어>가 그중 한편이었다. <짝패>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싸움 잘하는 10대 소년이었는데, 약간 껄렁껄렁하거나 가벼운 모습들을 좋게 보신 것 같다. <스페어>의 길도가 딱 그런 남자 아닌가.

-길도는 위악적으로 연기할 수도 있었을 캐릭터다. 사채빚에 허덕이면서도 노름을 놓지 못하고, 친구까지 등쳐먹는 ‘양아치’아닌가. 그런데 막상 연기 할 때는 많이 절제했을 것 같더라.
=사실 나도 욕심이 있긴 했다. 첫 주연이니까, 그동안 갈구하던 걸 다 쏟아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 데 감독님이 절제를 시켜주시더라. 다른 작품에서 그렇게 하고, 여기서는 그러지 말라고. (웃음) 나 또한 평소 생각이 배우는 감독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다른 배우들은 액션이 부각되는데, 길도만 액션이 없다. 아쉽지는 않았나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웃음) 사실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스페어>에 나오는 고난이도 액션은 내가 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스토리에 엮여 있는 액션은 연습하면 따라갈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액션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또 드라마적인 연기가 나한테는 더 어려울 거라고 봤다.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건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보다는 약하거나 자신없는 연기를 파고들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길도를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는 걸 좋아했다. (웃음) 개그맨 흉내내고 춤추는 걸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좋아해주니까 나도 신났던 거지. 그때만 해도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현진영, 듀스의 비디오를 보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 좋아했다. 그러다 전문적으로 해보자 싶었는데, 고향인 부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나중에야 부산에 연기학원이 생겨서 등록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원친구들이 거기서는 죄다 표준어를 쓰는데, 나도 경상도 남자인지 그게 너무 낯 간지러운 거다. (웃음)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울 와 서울예대에 들어간 뒤부터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처음 출연한 작품이 뭐였나.
=있긴 있는데, 생각하기 너무 싫어서…. <7인의 새벽>이란 영화다. <미인>의 이지현 선배가 출연한 영화인데, 정말 멋도 모르고 했다. 19살짜리 애가 처음으로 현장에 갔으니 오죽하겠나. 액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매 순간 긴장해서 밥도 못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일 정도로 힘든 현장이었다. 보통 이야기할 때는 내 첫 작품을 <라이터를 켜라>로 이야기한다. 차승원 선배님의 부하7로 나왔는 데, 그 이후로는 그나마 더 얼굴을 알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많은 배우들이 겪는 건데. 출연하기로 해놓고도 영화가 엎어지거나 배우가 바뀌는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많았다. 정말 배우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엎어진 작품 중 하나가 <데우스 마키나>였다. 권상우랑 김정화가 나오는 영화인데, 50% 정도 촬영하다 엎어졌다. 그래도 나는 내 분량을 다 찍어서 잔금도 다 받았다. (웃음)

-앞으로는 배우로서 어떤 캐릭터를 구축하고 싶나.
=일상적인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 존경받는 선배님들을 닮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건 아직 내 마음속에서만 갖고 싶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너무나 상습적인 표현일까? 그래도 그 색깔이 모두 내 색깔 안에 포함된다면 될 것 같다. 어떤 캐릭터든 내가 거기에 다가가기보다 내 안에 데려와서 연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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