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인터뷰] <월·E>의 엑시엄호 선장, 캡틴 맥크리
2008-08-21
글 : 김도훈
지구를 재건하는 것도 우리 몫이죠

-어머나, 살이 엄청 빠지셨네요! 축하드려요. 정말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에 도착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으니까요. 직접 땅도 갈고 밭도 매고 집도 짓고 하다보니 살이 쑥쑥 빠집니다. 저한테 광대뼈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니까요. 큭큭.

-정말 멋져요. 이젠 V라인도 막 생기시려고 하네요. 사실 케이블TV에서 <도전 팻 제로!>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도 느낀 거지만 뚱뚱한 사람들이 살 빠지면 갑자기 훈남훈녀로 돌변하더라고요.
=맥크리 집안이 이래봬도 대대로 훈남 집안 출신입니다. 살만 더 빠지면 아주 볼 만할 겁니다. 우하하하하.

-그래도 좀 힘들진 않으세요? 아무래도 이제는 중력이라는 걸 어깨에 메고 사셔야 하잖아요.
=사실 되게 힘들긴 합니다. 갑자기 아틀라스라도 된 기분입니다. 척추와 다리뼈를 사용해서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익숙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더 큰 문제는 게으름이죠. 테크놀로지는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예전처럼 공중부양 소파에 누워서 살고 싶은 욕구가 하루에도 몇번씩 솟아납니다. 참아야죠 뭐.

-월·E는 어떻습니까. 잘 지내고 있나요?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거절하더라고요.
=알다시피 조금 수줍음이 많은 친구라 그렇습니다. 월·E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구로 귀환한 엑시엄 부족의 마스코트가 됐어요. 그냥 예전대로 마음에 드는 수집품이나 모으고 뮤지컬영화나 보면서 편하게 지내도 될 텐데…. 지금도 여전히 매일매일 밖으로 나가서 쓰레기 더미들을 압축하고 있어요. 그게 자신이 태어난 이유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더군요. 혼자서 하면 너무 힘들까봐 최근에는 월·E 생산공장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곧 수많은 월·E들이 함께 일하게 될 겁니다.

-그거 정말 반가운 이야기네요. 하지만 다른 월·E들과 우리 월·E는 어떻게 구분하죠? 색깔이라도 다르게 입혀야 하는 건가요.
=글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월·E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특별 대접 같은 걸 아주 쑥스러워하는 친구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모든 월·E. 아니, 모든 로봇들은 동등하고 자유로운 권리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사실 로봇 권리에 대한 법령을 얼마 전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로봇들도 인격이 있으며 인간과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법령이지요.

-그런데 아까 월·E가 엑시엄 부족의 마스코트라고 하셨잖아요. 왜 ‘엑시엄 부족’이라는 말을 쓰시는 거죠?
=저희가 지구로 귀환한 유일한 인간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마 엑시엄호 탑승객이 인류의 마지막 후예라고 생각하셨던 건 아니겠죠? 엑시엄호의 귀환 소식을 듣고 우주에 퍼져 있던 수많은 우주선들이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이젠 각자 착륙한 지방에서 천천히 터전을 만들어나가고 있지요.

-혹시 너무 빨리 지구로 귀환했다고 생각하는 세력은 없었나요? 이브가 가져온 풀 한 포기에 희망을 모조리 걸고 지구로 돌아왔지만 척박한 환경을 보고 낙담하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내내 걱정이 좀 됐습니다.
=물론 다시 엑시엄호를 타고 우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역시 그런 존재니까요. 쉽게 희망을 걸고 또 쉽게 낙담을 하며 과거를 돌아보지요. 하지만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영원히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우리가 망쳐놓은 세계이니 청소를 하고 재건하는 일도 우리의 몫입니다. 월·E의 가냘픈 어깨에만 그렇게 거대한 짐을 얹어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나저나 오토는 어찌됐나요? 엑시엄호가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도록 온갖 술수를 다 썼잖아요. 파괴하셨죠?
=아뇨. 오토도 인격이 있는 로봇인데 저희 맘대로 파기할 순 없습니다. 사형제도라는 비논리적…. 네, 비윤리적이 아니라 비논리적인 제도죠. 여튼 그게 사라진 지 7세기가 지났는데 저희가 다시 부활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신 로봇3원칙을 새로 오토의 두뇌에 프로그래밍해서 넣었습니다. 요즘은 그 악명 높았던 ‘빨간눈의 Hal’과 함께 위성통신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주 사명감이 투철한 친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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