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국영화박물관 전시품 기증 릴레이 51] <꼬방동네 사람들> 시나리오
2008-08-25
글 : 최소원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램팀)

<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51번째는 배창호 감독이 기증한 <꼬방동네 사람들> 시나리오입니다.

배창호 감독은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곧 서울로 이사해 신당동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근처 동화극장과 광무극장의 상영프로그램을 꿰찼던 ‘시네마키드’였다. 영화배우에 대한 동경은 대학 시절 연극반 활동과 시나리오를 쓰며 감독의 꿈으로 바뀌었고, 이장호 감독을 만나면서 현실이 되었다. 배창호는 <별들의 고향> 이후 대마초 사건으로 근신 중이던 이장호 감독의 재기소식을 듣자마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했다. <어둠의 자식들>의 원작자 이동철은 배창호를 높이 평가해 베스트셀러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연출을 맡겼고, 당시 보기 드문 리얼리즘 수작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배창호의 화려한 80년대를 열었다. 시나리오 사전검열을 담당했던 문공부에서 ‘제목을 <검은 장갑>으로 바꿀 것’, ‘서민들의 방에 요강을 두지 말 것’, ‘순경이 시민에게 반말을 하지 말 것’, ‘부부싸움을 할 때 부인의 머리채를 잡지 말 것’ 등 60군데가량의 수정을 지시했지만, 배창호 감독은 담당자를 직접 찾아가 ‘영화를 찍지 말라는 거냐’며 거세게 항의했고 담당자로부터 ‘우리로선 어쩔 수 없으니 알아서 찍으라’는 답을 받아 틀거리만 멜로드라마로 살짝 바꾼 채 그대로 찍었다고 한다. 배창호 감독이 기증한 시나리오의 표지에 나온 신인감독에 대한 소개 ‘영화를 하겠다고 헤맨 그 유명한 미친 짓 때문에 충무로에서 웬만한 사람은 이놈의 특출난 등장이 <꼬방동네…>인지 이미 다 안다’처럼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스물아홉 청년의 데뷔는 당찼다. 이후 최인호 원작의 <적도의 꽃>(1983)이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암울한 시대를 사는 당대 젊은이의 감성을 대변했던 <고래사냥>(1984)이 크게 성공했으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와 <깊고 푸른 밤>(1985)의 연이은 성공으로 배창호는 흥행감독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 <황진이>(1986),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으로 이어지는 영화미학의 실험까지, 배창호 감독은 한국영화사의 ‘암흑기’로 불리며 사전 사후 검열로 숨막혔던 1980년대 영화계에 대중적 감각과 실험정신을 가지고 현재진행형 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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