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야망도 없어 보이는 남자.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동호는 나사가 하나쯤 풀린 것 같은 인물이다. 갑자기 쳐들어온 동갑 여자친구의 빌붙기엔 좋다 싫다 말도 못하고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나가달라는 록밴드 선배의 말에도 별 화를 내지 않는다. 너무 착해서 세상살이가 불안불안할 것 같은 그런 사람. 언뜻 듣기엔 답답할 것 같지만 동호의 행동은 오히려 귀엽다. 두 손가락으로 휴지를 잡고 치우는 동작이나 반쯤 풀린 눈으로 올려보는 시선이 흡사 ‘애완동물’ 같다. 세상과 너무 떨어져 있어 오히려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단 하나의 궁금증. 대체 저 배우는 누굴까. 100% 실제 성격 그대로일 거라 믿었지만 동호 역의 유하준은 오히려 말쑥한 도시남에 가깝다. 화장품, 디지털카메라 등 찍었던 CF나 <비스티 보이즈>, 드라마 <어느 멋진 날> 등 그가 지금껏 연기했던 인물들은 모두 흠집 하나 없는 냉철한 이미지다. 성유리와 함께 출연했던 <어느 멋진 날>의 변태남을 안다면 ‘헉’하고 놀랄 테고, 전도연을 등 뒤에서 안았던 CF 속 남자를 기억하는 눈썰미라면 무릎을 치고 일어날 거다. “한국영화에 많이 없는 캐릭터”라 애착이 갔고, “말이 아닌 상황, 캐릭터에서 오는 코미디를 할 수 있어” 좋았던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에서 유하준은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인물”에 도전했다. “최소한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동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를 “다이어리에 적으며” 궁리했고, “왠지 동호는 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감독에게 “(테이크를) 한번 더 가자”고 제안도 했다. 그런 노력 덕택이었는지 <여기보다 어딘가에>에서 유하준은 반짝반짝 빛는다. 우울한 청춘의 옷을 입고도 암울하지 않는 미래를 건네온다. 그리고 이는 배우 유하준이 갖는 마음가짐과도 같다. 2003년 영화 <써클>로 데뷔해 ‘강수연과 함께하는 짜릿함’을 맛봤지만 유하준은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밟진 못했다. <하류인생>을 할 때까진 소속사도 없이 혼자 오디션장을 오가며 전전했고, 20대를 보냈던 2007년엔 ‘배우를 계속 해야 할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동호의 여유를 미덕으로 고비를 넘겼다.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욕심을 버리자”고 생각했고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선에서 마음을 편히 잡았다. 친구인 배우 정경호와 함께 운영하는 쇼핑몰 더블빌도 성공에 대한 집착 대신 택했던 약간의 외도다. 동호의 마음처럼 편안하게, 하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고. 배우 유하준이 가는 길은 느리지만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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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유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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