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우린 액션배우다>의 정체
2008-08-29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우린 액션배우다>는 올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먼저 본 친구들로부터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나 역시 개봉을 기다렸다. 서울액션스쿨 8기생의 이야기라는 말만 듣고 스턴트맨의 애환을 다룬 눈물나는 다큐멘터리를 예상했는데 웬걸 킥킥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코미디다.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귀엽고 바보 같다는 느낌을 줄 만큼 솔직해서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 자연스러움은 무엇보다 감독 정병길이 그들의 친구이자 동료, 액션스쿨 동기생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가까운 인물에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무조건 명랑쾌활하란 법은 없다. 주성치를 동경해 영화를 시작했다는 정병길의 고백에서 묻어나듯 이 영화는 주성치의 미학에 젖줄을 대고 있다. 주성치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 혹은 마이너리티인 등장인물들을 놀리고 고난에 빠트리지만 그들에 대한 진한 애정으로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화장실 유머는 없어도 <우린 액션배우다>는 주성치의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영화다.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성실하게 스턴트맨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면 등장인물 가운데 권귀덕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액션스쿨에 입학할 때 잘하는 운동도 없었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던 귀덕은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동기생 가운데 가장 인정받는 스턴트맨이 됐다. 액션스쿨 졸업작품 <칼날 위에 서다>를 찍을 때 감독이자 주인공인 정병길과 싸우는 장면에서 그는 이가 빠지는 부상을 애써 동료들에게 숨겼다. 빨리 촬영을 재개하자면 혼자 조용히 화장실에서 빠진 이를 버리고 나오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이런 프로의식이 그를 뛰어난 스턴트맨으로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귀덕의 이야기를 남들보다 특별히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 귀덕을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로 축소하면서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다 상경한 청년 전세진의 이야기가 의외로 비중있게 처리된다. 무슨 일이든 끈기있게 버티지 못하는 세진은 액션스쿨 졸업 뒤에 문신을 해야 팔자가 달라진다는 점쟁이의 말만 믿고 등에 호랑이 문신을 새긴 채 제주도로 돌아갔다. <우린 액션배우다>가 액션배우랑 별 관련없는 세진의 이야기를 끝까지 품에 안는 이유는 귀덕의 이야기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는 이유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스턴트맨으로 가는 고난의 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몸 하나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보려는 20대 청년들의 어떤 날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일부 장면을 연출해서 찍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연출한 장면이 있다는 것이 치명적 결함이 되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사실을 얼마나 정확히 그리느냐에 목표를 둔 영화가 아니다. 거짓으로 만든 장면을 통해서라도 영화는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젊은 날의 초상을 그리려 한다. 정병길 감독이 동기생을 향해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 그들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예측 불허의 시간들이 흘러간다. 그 자신이 비디오만 보던 백수로 지내다 영화감독이 된 것처럼 동기생들도 4년 전 오디션 장면이나 엠티 장면에 있던 그들과 달라졌다. 영화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 모두는 무력한 몽상가에서 진보적 활동가로 다시 태어났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오랜만에 만나는 진솔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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