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샤오허] “창작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이 경험이다”
2008-09-02
글 : 강병진
사진 : 김진희
시네마디지털2008 참석차 내한한 <중경>의 배우 샤오허

영화 <중경>의 배우 샤오허가 시네마디지털서울2008 영화제를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 <중경>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은 경찰관 왕위다. 폭발 직전의 사람들에게 꽂힌 뇌관을 건드리는 이야기인 이 영화에서 왕위는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극한의 폭발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그의 폭발은 애인을 향한 폭력부터 전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샤오허는 왕위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는 격한 감정들을 폭력으로 드러내면서 주변 환경을 파괴하는 남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줄곧 ‘감사합니다’란 한국말을 내뱉는 선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아침식사를 했던 지난 8월26일, 남산을 훑어보고 온 그를 서둘러 만났다.

-영화 속의 모습보다 훨씬 젊은 것 같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웃음) 사실 서른세살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는 록밴드를 이끄는 가수라고 들었다. <중경>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장률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리홍치 감독의 <황금연휴>란 작품이 있다. 내가 그 영화에 출연했었는데, 그때 만난 장률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중경>에도 출연하게 됐다.

-이전에 장률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망종>을 봤었다. 어떤 사람은 그 영화 속의 경찰관과 왕위를 비슷하게 보기도 하더라. 하지만 난 다른 것 같다.

-왕위는 어떤 남자로 봤기에.
=감독님은 다른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내 생각으로 보자면 일단 <중경>이란 영화는 스트레스를 안고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왕위 또한 그런 스트레스를 드러내는 방식에서 기복이 심한 남자다.

-장률 감독은 당신의 어떤 점 때문에 왕위를 맡겼다고 하던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경찰 같지 않은 사람을 경찰로 캐스팅해서 관객에게 기괴한 느낌을 주고자 하셨다더라. 나는 가수이기 때문에 경찰이라는 직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또 실제로 영화 속의 경찰도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경찰의 모습은 아니지 않나.

-<중경>과 연작인 <이리>에는 전문배우들이 출연한다. 하지만 비전문배우들이 출연한 <중경>의 현장에서는 감독의 연기지도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게 본인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이번 영화제에서도 누군가가 비슷한 질문을 감독님께 하더라. 아, <이리>에 나온 여자배우가 그 질문을 했다. 윤진서? 맞다. 윤진서다. 아마 <이리>와 <중경>의 현장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함께 출연한 쑤이는 배우이지만, 원래 음악을 했던 사람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둘 다 내면에 어떤 반항심 같은 감정, 혹은 자유로운 생각을 품고 있다. 장률 감독은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 있도록 해줬다. 물론 중경이란 도시 자체가 너무 더워서 배우들이 모두 힘들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웃음)

-영화를 찍기 전에 중경에 가본 적이 있나
=<중경>을 촬영하면서 가본 게 처음이었다. 왕위의 눈으로 볼 때는 답답한 도시인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재밌는 도시였다. 맛있는 것도 많고. (웃음)

-영화에서 보면 전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 전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글쎄, 그리 많은 생각을 한 장면은 아니었다. 다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여러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을까부터 왜 이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까 이런 거… 그리고 어렸을 때 봤던 미치광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번 영화제 기간 중에 공연을 했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로는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는데, 꼭 신기가 내린 무당 같았다고 하더라.
=순간적으로 느낀 것들을 가사없이 흥얼거리면서 공연했다. 무당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동안 일관되게 생각해온 것 중 하나가 창작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이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좀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해, 아니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들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특히 음악을 하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로 받아들지도 않는다. 오로지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에 몰입한다. 감독이 위주인 영화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만이 그처럼 영혼이 나갔다 들어오는 창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면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음악인가, 영화인가.
=지금은 머릿속에 음악만 있다. 사실 새로운 앨범을 녹음 중이었는데, 한국을 찾게 됐다. 영화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만약 장률 감독이 또 제의해준다면 기꺼이 출연할 생각은 있다. <중경>의 현장은 나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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