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오프닝 시퀀스가 인상적인 <미러>는 김성호 감독의 2003년 <거울속으로>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으로 <언덕이 보고 있다>의 프랑스 출신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거울 속의 존재가 살인을 일으킨다는 기본 전제와 특히 원작의 엔딩이 놀라웠다는 감독은 어디서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의 이미지가 주는 공포감을 영화에서 극대화하고 있다. 은회색에 옅은 핑크색 줄무늬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난 키퍼 서덜런드는 누구보다도 온화한 느낌을 주는 배우였다. 그는 영화사 직원이 지정된 시간이 다 되었다고 재촉하자 “내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날 테니(시간을 끌어줄 테니), 그동안 질문을 계속해요”라며 마지막 질문까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어렸을 때 무서워했던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마다 달랐던 것 같은데. 굳이 들자면어머니가 나 때문에 화가 난다거나 바닷가에서 나를 향해 밀려오는 파도 정도? 나는 꽤 평범한 아이였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두렵다. 이를테면, 우리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용감한 사람이 곧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렵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행동하지 않으면 일어날 결과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지 않을까. <24>의 잭 바우어만 봐도 그렇지 않나.
-당신의 연기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어떤가(그의 아버지는 도널드 서덜런드이고, 어머니는 셜리 더글러스인 배우 가족이다).
=처음에 배우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고, 아버지는 그때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활동하실 때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적었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18살 때 찍은 댄 페트리에 감독의 <부둣가의 비밀>(The Bay Boy)이 끝나고 정말 진지하게 배우를 평생 가야 할 길로 선택했을 즈음이다. 그때 아버지가 지문에 운다라고 나와 있어도, 내가 그 감정선까지 가지 못했는데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것은 화면에 그대로 다 보인다며, 그렇게 해서 얻은 연기는 나중에 대가를 치른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그 말씀을 지금도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정말 가족간에 있음직한 평범한 대화들만 오간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벤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와닿았다. 단순히 공포영화라기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배우인 나는 관객이 벤과 그의 가족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이 가지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당신은 관객을 공포에 떨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때까지 고개를 약간 숙이고 곰곰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렉상드르가 고개를 들고 씨익 웃으며 “(프랑스 억양으로) 그건 문제없어”라고 하더라. 알렉상드르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이 사람은 이 작업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게 느껴진다. 사실 하루 종일 진을 빼는 촬영이 끝날 즈음에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마다 그는 계속 더 찍자며 지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렉상드르의 열정은 전염성이 있어서 결국 모두가 알렉상드르처럼 되어버린다. 정말 뛰어난 영상감각을 가진 감독이다. 현재 어떤 기술이 가능한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안다.
-원작이 한국의 공포영화다. 아시아 공포영화가 할리우드에서 계속 성공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한동안 <스크림> 같은 이전 공포영화의 패러디 작품이 유행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패러디를 만든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시기에 아시아의 독특한 공포영화가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 것 같다.
-촬영하면서 힘든 기억이 있다면.
=루마니아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동유럽영화의 제작 수준이 뛰어나서 현지 스탭들이 실력도 좋고 자부심도 세다. 그런데 이전에 할리우드영화라면서 그곳에 와서 촬영했던 제작팀들의 수준이 형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번에도 또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영화겠지라고 생각들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에 현지 스탭들과 작업하는 데 알 수 없는 거리감이 현장에 팽배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폭발장면을 찍고 나니까 스탭들이 통역사에게 슬며시 다가가서는 “이 영화는 그냥 평범한 영화가 아닌가보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알렉상드르가 씨익 웃으며 “그렇다. 평범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하더라. 그 이후 스탭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TV시리즈 <24>가 당신의 배우 경력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엄청나다. 신문에서 내 연기 경력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가끔 드는 생각이, 이전까지의 내 경력이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형편없었단 말이야 싶은 생각이 들더라. (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 뽑히게 될 새로운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간단히)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