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DVD]
[울트라 마니아] 죽어도 눈은 못 감아
2008-09-05
글 : 주성철

재개봉한 <영웅본색>이 흥행도 그렇고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니 반갑다. <영웅본색>하면 다들 주윤발과 장국영을 제일 먼저 떠올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1편과 2편에 장국영의 머리숱 부족한 형 송자호로 출연한 적룡이 더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는 유덕화 주연 <삼국지: 용의 부활>에 관우로 출연하고, 국내영화 <조폭마누라3>에 서기의 아버지이자 삼합회의 보스로 우정 출연할 정도로 홍콩영화계의 거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과거 이소룡 이전에 이미 화려한 발차기와 당당한 체격으로 유명했던 꽃미남 쿵후스타였다. <명장>(2007)이 리메이크한, <자마>(1973)에서 형제(진관태)의 여자가 적룡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는 설정은 <명장>과 달리 무척 중요했다. 당시 장철 영화에서 콤비로 맹활약했던 적룡과 강대위는 거의 모든 연예잡지의 표지를 독식하다시피 한 스타 중의 스타였다.

1946년생, 본명이 담부영인 적룡은 홍콩 쇼브러더스의 전설적 배우 왕우를 동경하던 열혈배우 지망생이었다(아들 담준언 역시 <화화형경> 등을 통해 촉망받는 배우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주경야무하며 액션배우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60년대 말 쇼브러더스 배우 훈련반에 등록하게 됐고, <독비도>(1967) 속편인 <독비도왕>(1968)에 고집 세고 표정없는 꽃미남 젊은이로 출연하면서 장철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정말 장동건처럼 어디에 둬도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의 배우였다. 짙은 눈썹이 토핑돼 있는 정의감에 불타는 눈매, 조각처럼 탄탄한 근육의 남성적 매력은 감히 그 이전과 이후 그 누구도 따라갈 자가 없다. 그래서인지 (감독이 시켜서 그랬겠지만) 영화에서 거의 웃통을 벗고 나왔다. 웃통을 벗으면 보호대를 착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액션배우로서는 무척 성가시고 고통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벗고 시작했다.

출연 분량만 보자면 강대위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복수>(1970)에서 거의 10여분 만에 죽지만 수십명의 적과 싸우다 눈을 잃고 쓰러지는 장면, <쾌활림>(1972)에서 적들을 모두 죽이고는 자신의 살점을 뜯어내 벽에다 “살인자는 무송이다”라고 쓰는 장면은 비장미의 극치다. 그렇게 장철이 1972년 <수호지>를 바탕으로 만든 <수호전> <탕구지> <쾌활림>에서 그는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는 무송을 연기했다(강대위는 연청). 그외 <사각>(1969), <보표>(1969), <대결투>(1971), <무명영웅>(1971) 등에서 다소 여성적인 이미지의 강대위와 상반된 지점에서 관객을 유혹했던 것.

선배 왕우가 그랬던 것처럼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역시 ‘죽어야 사는 남자’였다. 적진에서 술에 취한 채 달아나다가 다리 위에서 무참하게 난도질당하는 <13인의 무사>(1970)에서 눈을 부릅뜬 채로 다리 위에 꼿꼿하게 선 채 죽음을 맞이했고, <탕구지>에서도 팔이 잘린 채 눈을 치켜뜨고는 바닥에 무릎만 댄 채로 앉은 자세로 죽었다. 자기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남자인데 정말 중과부적으로 몰리게 되면 적을 노려보며 그냥 젠장 혀를 깨물고 자살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는 정말 자존심 하나뿐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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