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로봇으로 변신시키는 오늘날의 CG기술이 달, 별, 우주비행선 정도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40년 전 CG라는 분야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유인원이 던진 뼈다귀가 지구 밖으로 날아가는 장면은 가장 충격적인 시각혁명을 일으킨 장면 중 하나다. 바로 이 장면을 만들어낸 더글라스 트럼블의 마스터 클래스가. 4일 오후2시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손수 노트북을 지참한 더글라스 트럼블은 자신이 작업한 영화들의 주요 장면들을 하나씩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블레이드 러너>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같이 유명한 영화들이 나올 때마다 거장에게 박수로 답례했다. 관객들의 박수에 힘을 얻는 듯, 이날 더글라스 트럼블은 언론에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관련된 귀중한 사진들을 풀어헤쳤다. 특히 담배를 피거나 소파에 앉아 있는 큐브릭 감독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와”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한 그는 진행자로 나온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의 저자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와 함께 학술세미나가 연상될 정도로 진지하게 강의를 열었다.
더글라스 트럼블과 스탠리 큐브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알아봤다. 지난 1964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곧바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시각효과를 논의했다. “스탠리 큐브릭은 이 영화의 시각효과에 대해서 ‘우리가 보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그림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나로서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원칙이었죠.” 더글라스 트럼블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위해 짜낸 아이디어는 애니메이션과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용하는 것부터 미니어쳐와 와이어까지 영화 제작기술을 총망라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주선 조종석 내부 장면을 찍는데 주로 사용한 ‘소세지 팩토리’라는 기술은 세트 안의 모니터에 나오는 각종 신호 영상, 조종석 앞 창문 밖으로 별, 위성 등이 보이는 우주공간 풍경을 동시에 카메라에 담는데 쓰였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 찍어 둔 사진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보여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먼저 우주선의 조종석 창 밖에 별, 위성그림을 붙인 대형 검은 색 보드판을 설치해요. 그리고 사전에 촬영해 둔 영상물을 모니터에 나오도록 하죠. 그리고 바닥에 트랙을 깔아 두 개의 필름이 동시에 돌아가는 특수 카메라를 올려놓습니다. 한 필름은 피사체를 촬영하는 필름이고, 또 다른 필름은 배경을 촬영해 놓은 필름이이에요. 그래서 피사체를 찍은 필름은 배경이 있는 네거티브 필름에 합성되어 영화의 주 배경인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전경과 우주의 풍경을 하나의 화면으로 담아내는 거죠.” 관객들은 거장의 친절한 설명을 비법으로 알아들은 듯 일일이 노트에 받아적었다. “창조적인 시각효과를 위해 세트, 카메라, 조명, 소품, 폴라로이드 사진, 와이어등 관련된 모든 아이디어를 총 동원해야 합니다. CG에만 의존해서는 원하는 것을 담아낼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더글라스 트럼블은 “40년전 당시 충격적인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던 장본인으로서 거의 모든 장면을 CG로 해결이 가능한 현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CG는 모든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반면 창작자의 상상력을 제한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 것과 새 것을 잘 혼합할 줄 알아야합니다”라고 답했다. 놀라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던 이날 매스터 클래스의 결론은 딱 한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CG를 이용할까 궁리하기 전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걸 꼭 명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