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사막의 이국정서에 대한 매혹
2008-09-05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아라비아의 로렌스>
<아라비아의 로렌스>

로렌스(피터 오툴)가 처음 파이잘 왕(알렉 기네스)을 만났을 때, 왕은 이렇게 말한다. “사막을 사랑하는 또 다른 영국인이군.”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영국 장교가 특이하게도 모래바람이 쌩쌩 부는 사막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점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는 사실 감독인 데이비드 린에게 해당되는 대사이기도 하다. 그의 사막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만들어질 수 없었다. 데이비드 린은 무려 2년 가까이 사막과 사투를 벌이며 대작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를 만들었다.

첫 아이디어는 <콰이강의 다리>(1957)의 대성공에서부터 나왔다. <콰이강의 다리>가 제작비의 10배를 벌어들이자, 제작자인 샘 스피겔과 데이비드 린은 한 번 더 이국정서를 자극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데이비드 린은 사막의 영웅으로 알려진 영국군 장교 로렌스의 일대기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들은 로렌스의 자서전인 <지혜의 일곱 기둥 The Seven Pillars of Wisdom>의 저작권을 사들인 뒤, 마치 해부하듯 모든 사실을 세세하게 학습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계획이 도중에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로렌스 관련 자료는 거의 모두 저작권을 구입했다. 촬영은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근처에 있는 요르단의 한 사막에서 시작됐다. 바로 로렌스가 알리(오마 샤리프)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사막은 마치 처녀지인듯 보이지만 사실은 미술팀이 빗자루 등을 이용하여 처녀지처럼 만들었다. 게다가 컬러를 살려내기 위해 물감까지 이용했다. 알리는 저 멀리 지평선에서 하나의 새까만 점처럼 보이더니, 점점 다가오며 로렌스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막의 전사처럼 등장한다. 아마 많은 관객이 바로 이 장면부터 사막과 두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들었을 텐데, 감독도 이 점을 잘 의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촬영의 맨 초반부에 찍었다.

광활한 사막의 장관은 물론이고, 사색하는 사막의 아름다움도 빼어나게 묘사됐다. 특히 로렌스가 밤새도록 혼자 사막에서 고민하며 아카바를 공격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이다. 새벽의 푸른 하늘 아래 잡힌 사막은 그 어떤 신전보다 더욱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막에서의 제작이라는 어려움 때문에 이 영화는 애초 촬영에 4개월을 잡았다. 그러나 실제 촬영은 예상을 훨씬 넘어 2년이 걸렸다. 제작비도 처음보다 5배 이상 뛰었다. 그런데도 <콰이강의 다리>에 이어 또 다시 아카데미에서 7개 부문을 수상했고, 흥행 성공까지 거뒀다. 여기서 생긴 자신감으로 데이비드 린은 러시아의 이국정서를 자극하는 <닥터 지바고>(1965)로 다시 대작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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