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스릴러의 탈을 쓴 애민주의의 결정체 <일촉즉발>
2008-09-05
글 : 박성렬 (객원기자)

<일촉즉발> Old Fish
고군서/중국/2008년/113분/컬러/국제경쟁부문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전철은 선로를 따라 달리고 시민들은 직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한 공터에서는 일본, 구소련의 재래식 폭탄과 지뢰들이 지축을 울린다. 이렇게 시작한 초반 5분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영화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주인공 노어는 손 기술이 조금 좋을 뿐인 평범한 가장이자 경찰이다. 아들의 제대를 앞두고 일거리를 찾아두는 것 외에는 낚시나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는데 갑작스럽게 폭탄이 발견되면서 분위기는 양단된다. 한 쪽에서는 폭탄을 다룰 줄 모르는 동료와 상관들이 노어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태평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공병 출신 노어의 긴박한 폭탄해체 스릴러가 펼쳐진다. 2006년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고군서는 2차대전 직후의 도쿄 전범 재판을 다룬 영화 <동경심판>이후 코언 형제의 <파고>처럼 유유하면서도 예리한 스릴러로 두번째 필모그래피를 장식했다. 데뷔작의 뿌리깊은 민족의식은 더욱 진일보해 주름진 인민의 발로 좁은 골목의 곳곳을 뛰어다닌다. 떡시루처럼 빽빽이 늘어선 주택들, 이기적이고 태만한 중국 공안, 비위생적인 도살장, 일자리가 없어 10위안에 폭탄을 팔아넘기는 노동 현실 등 중국 대륙의 적나라한 생활 실태에 눈높이를 맞춘 <일촉즉발>은 스릴러의 탈을 쓴 애민주의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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