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노래> Birdsong
알베르 세라/스페인/2008년/98분/흑백/칸 감독주간 40주년 특별전
2008년 칸 감독주간을 통해 소개된 작품. <기사에게 경배를>로 역시 2006년 칸 감독주간을 통해 주목받은 알베르 세라 감독의 신작이다. 동방박사 3인이 별의 안내를 받아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간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새들이 노래>는 관객에게는 매우 강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여행담이다. 영화는 그들의 여행길을 느리고 어두운 분위기로 관조한다. 사막의 풍경을 담는 흑백톤의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는 햇빛의 움직임,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느릿한 걸음걸이뿐이다. 동방박사들을 기다리는 마리아와 요셉의 표정은 그들의 축복이 아니라,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이벤트를 고대하는 듯 보일 정도. 게다가 밤장면들은 아예 형체를 구분할 수 없도록 촬영됐다.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있으나, 대사가 중요치는 않다. 하지만 이렇듯 괴이한 영상미학으로 묘사된 동방박사의 여행길은 종종 익살스러운 순간들을 드러낸다. 바다에서 물장난을 하거나, 숲속에서 노숙을 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에서 종교적인 경건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러운 일을 맡은 듯한 표정이다. 알베르 세라 감독은 이들의 여행을 통해 명상을 유도하는 듯 보인다. 풍요로운 자연과 여유로운 움직임은 마치 최면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신기한 체험의 기회를 선사한다. 그러니 영화를 관람하던 중 잠시 졸았다고 해서 속상해 할 필요도 없고, 재미없는 영화를 봤다고 짜증낼 필요도 없을 듯. 재밌는 사실은 극중에서 동방박사를 연기한 3명의 배우들이 모두 똑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 성만 다를 뿐 루이스(Lluis)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루이스 카르보, 루이스 세라트 바틀레, 루이스 세라트 마사넬라스다. 촬영방법과 영상문법, 그리고 제작과정조차 기이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