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조용하고 담담한 <조용한 혼돈>
2008-09-06
글 : 박성렬 (객원기자)

조용한 혼돈 Quiet Chaos
안또넬로 그리말디 | 이탈리아 | 2008년 | 112분 | 컬러 | 국제경쟁부문

대기업의 중역 피에트로(난니 모레티)는 아내를 잃고도 울지 않는다. 다만 학교 앞에서 딸의 하교를 기다리거나 이따금 딸의 학교 앞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들이쉬면서 그저 밝아만 보였던 과거를 담담하게 회상할 뿐이다. 피에트로의 행동은 눈에 띄면서도 초연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연민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직장의 동료들은 부처같아 보이는 피에트로에게 고된 회사일과 가정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다. 딸인 클라우디아는 거꾸로 읽어도 같은 뜻이 되는 회문을 학교에서 배워오는데 화면으로 읽을 수 있는 피에트로의 태도 역시 통째로 뒤집힌 환경에도 의연한 점이 회문과 같다. 그러나 돌심장을 가지지 않은 이상 마음 속마저 털털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외로운 홀아비는 뒤늦게 눈물을 쏟아내면서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속적인 일상으로 복귀한다. 홀아비의 자기치유와 홀로서기를 그려낸 이 휴먼드라마에서 빛나는 것은 단연 배우와 음악이다. 주인공 피에트로 역할을 맡은 난니 모레티는 <4월> <아들의 방> 등으로 감독과 연기 모두를 인정받은 이탈리아 영화의 팔색조다. 영국밴드 라디오헤드 특유의 흐느끼는 음악이 들려오고 난니 모레티가 독백을 읊으니 정말 가슴시린 영화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조용한 혼돈>은 제목처럼 조용하고 담담하다. 후반의 급작스럽고 적나라한 섹스신과 로만 폴란스키의 깜짝 출연은 예외.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