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뒤늦은 깨달음과 의미심장한 비유 <트랩>
2008-09-07
글 : 박성렬 (객원기자)

<트랩> The Trap
슬로단 고르보비치/세르비아, 독일, 헝가리/2007년/106분/컬러/국제경쟁부문

바람을 쐬러 나온듯한 남자는 도시의 스산한 풍경과 마주친다. 도시는 공사장처럼 황량한 회색빛이고 언뜻 건물 사이로 크레인의 팔마저 불쑥 튀어나와있다. <트랩>의 첫 장면이다. 이윽고 뒷모습만 보여주었던 남자는 앞모습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주인공인 믈라덴은 공기업에서 일하며 교사인 아내와 함께 외동아들을 먹여살리고 있는데 아들의 급작스런 병세 악화로 찾아간 병원에서는 맞벌이 부부에게조차 상상도 못할 액수의 수술비를 요구한다. 첫 장면의 뒷모습은 중대한 고비에 선 가장의 뒷모습이었고, 아들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는 아비에게 세계는 그토록 매몰차고 황량해 보였던 것이다. <트랩>은 이처럼 뒤늦은 깨달음과 의미심장한 비유로 가득차있다. 이후 아들의 수술비를 대가로 살인을 의뢰받은 믈라덴은 이웃의 남자를 죽이거나 아들의 죽음을 방관해야 한다. 영화는 살풍경한 유럽의 겨울을 십분 활용해 막다른 골목에 놓인 믈라덴의 심정을 가슴에 저미도록 표현한다. 성에가 짙은 유리창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믈라덴의 미래를 의미하는 것 같고, 텅 빈 액자는 믈라덴의 어떤 행동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것 같다. 죄책감과 자존심을 주요한 테마로 내세우는 <트랩>은 표현의 진중한 멋까지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쏙 빼닮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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