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스코시즈-드 니로’협업의 정점
2008-09-07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성난 황소>
<성난 황소>

<성난 황소>(1980)를 만들기 전 마틴 스코시즈는 약물중독에 빠져 있었다. <뉴욕 뉴욕>(1977)을 만들며, 그는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의 사치스러운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록 밴드인 더 밴드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왈츠>(1978)를 만들 때는 밴드의 리더인 로비 로버트슨과 친해지며 코카인 중독이 되고 말았다. 생명이 위험한 수준까지 갔고, 주위의 동료들이 수차례 충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스코시즈를 구한 것은 로버트 드 니로라고 알려져 있다. 바로 <성난 황소>의 제작 때문이다. 이 영화 제작에 몰두하느라 그는 약을 끊었다.

드 니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불같은 삶에 대한 전기를 읽고 큰 매력을 느꼈다. 영화를 만들자고 매일 같이 스코시즈를 재촉했다. 당시는 천박한 권투영화들이 많았다. 모두 <록키>(1976)의 영향인데, 1979년 한 해에만 <록키 2>,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의 <메인 이벤트>, 그리고 존 보이트 주연의 <챔프> 등이 연이어 나왔다. 스코시즈는 권투영화에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결국 그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 때문이었다. ‘자기 파괴적인 남자’, 다시 말해 ‘마치 자신이 살아 있을 가치도 없는 것처럼 싸우는 남자’에 대한 동일시가 있었다. 약물중독의 파괴적인 경험이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던 것이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제작됐다. 라모타가 권투할 때와 ‘뚱보’가 돼 코미디 연기를 할 때다. 스코시즈는 기존의 권투영화들이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이유는 카메라가 관객의 시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는 카메라를 링 안으로 들고 들어가, 관객들이 마치 복서와 싸우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권투 장면에선 라모타가 직접 참여하여 드 니로의 연기를 도왔다.

드 니로의 ‘자기 파괴적’인 메소드 연기는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영화의 처음과 뒷부분에 나오는 뚱보 라모타를 위해 그는 진짜로 살을 찌웠다. 특수분장을 한 게 아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지역에서 매일 음식을 입 안으로 쑤셔 넣으며 4개월간 60 파운드를 찌웠다. 그 동안 스코시즈는 스태프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며 드 니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알 파치노와 더불어 할리우드 메소드 연기의 새로운 스타로 경쟁하던 드 니로는 <성난 황소>로 한 발 앞서 나갔다. 허구와 실제 사이의 구분이 모호한 지점까지 연기가 이어진 것이다.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로 이어지던 스코시즈와 드 니로 사이의 협업은 <성난 황소>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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