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구스처럼 걷고, 머리는 부스스한 모습에, 이상한 말투로 중얼거리던 노다메. 코믹하기 그지없었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현장에서 우에노 주리는 이상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웃음을 유발하던 브라운관 속 우에노와 달리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미간에 힘을 주고 감독 지시를 하나하나 되새겼다. <스윙걸즈>나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의 유쾌, 발랄한 모습과 정반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에노는 의외의 구석에서 고민에 빠졌다. 2006년 <무지개 여신>에선 사랑을 아프게 보낸 아오이를 연기했고, 올해는 드라마 <라스트 프렌즈>에서 여자를 사랑하는 바이커 루카로 출연했다. 숏커트에 남자처럼 툭툭 내뱉는 말투. <스윙걸즈>의 발랄한 합주와 영 딴판이다. 올해 23살. 소녀의 옷을 막 벗은 그녀는 배우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서면 인터뷰지에서 유독 ‘여자가 됐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만 노 코멘트로 답한 것도 이유가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녀의 11번째 영화 <나오코>의 나오코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소녀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첫 느낌은 어땠나요.
=육상을 통한 인간의 강함과 나약함, 갈등이 그려져 있었어요. 육상을 좋아하지 않아도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게다가 캐릭터들이 모두 순수하고 멋져서 그들이 함께 뛰는 걸 보는 건 저로서도 기대가 됐던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나오코의 감정 표현은 많지 않아요. 인물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촬영 전에 프로듀서인 구보타 오사무에게 계속 물었어요. “나오코는 어떤 아이예요?” 그랬더니 구보타는 아직 연애도 해보지 않았고, 유스케와의 관계는 연애도 아니고, 단지 응원하는 것도 아닌, 숙명을 짊어진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통하는 거라고. 확실히 나오코는 자신의 기분을 말이나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그래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인 것 같고요. 하지만 강한 아이고, 절대 부정적이진 않아요. 어두워지지 않도록,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한발씩 착실히 걸어가는 지구력이 강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오코는 유스케를 계속 바라보는 설정이에요. 연기에 있어서도 액션보다는 리액션이 많았을 것 같아요.
=나오코는 다른 캐릭터와 달리 역할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그냥 이미지가 생겨나지 않는 캐릭터였어요. 혼자 있을 때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메이크업을 할지 전혀 알 수 없고, 그게 사람에 따라 또 변하니까요. 감독님도 ‘해보지 않고는 나도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연기를 위해 많이 준비하고 연습하진 않았습니다. 그 점이 또 힘들었고요.
-학창 시절 부활동으로 육상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 경험이 이번 영화에 도움이 되었나요.
=육상은 엄마도, 언니도 했어요. 하지만 전 언니가 항상 피곤한 모습으로 귀가하는 걸 봐서 별로 하고 싶지 않았죠. 전 왜 달리는 게 재밌냐고 엄마한테 따져 물었지만 엄마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니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번에 <나오코>를 하면서 엄마가 말했던 재미라는 게 이런 걸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달리기를 통해 과거를 극복하는 캐릭터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오코는 선수는 아니지만 뛰는 장면들이 꽤 많아요. 힘들진 않았나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제가 육상을 했기 때문에 일단 폼은 잡혀 있었어요. 그래도 촬영 전에 도쿄에서 레슨을 받았고요. 나오코에겐 마구 뛰거나, 근육을 만드는 트레이닝이 필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트레이너에게 뛰는 자세에 대해 2시간 정도 배웠어요. 예전 경험이 있어선지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왠지 운동복이 아닌 교복 차림으로 달리는 게 더 설레고 재밌더라고요.
-규슈에서 계속 촬영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현장은 어땠나요.
=원작 만화와 똑같이 이키섬이란 곳에서 촬영했어요. 꼭 제가 원작 속 나오코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막 달리다 멤버들에게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고, 학생이 된 것처럼 철봉에 매달려 장난도 치고. 화기애애했어요. 마치 여름날을 캠프를 하며 보낸 기분이랄까요.
-한국에선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영화 <스윙걸즈> 때문에 우에노 주리는 밝은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하지만 사실 어두운 캐릭터도 많이 연기했잖아요. 실제로 어떤 게 편안하게 느껴지나요.
=제가 특정한 한 캐릭터를 닮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연기한 인물들의 어느 부분은 저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고, 또 어쩔 때는 분명 닮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제게 주어졌다고 생각도 해요. <라스트 프렌즈>에서의 루카는 힘내서 열심히 하자는 부분이 저와 비슷한 것 같고,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와는 이상한 말버릇이 닮았어요. 악보를 안 보고 피아노를 치는 것도 비슷하고요.
-2001년 데뷔했으니 벌써 8년째네요. 데뷔 당시와 비교해 가장 다르게 느끼는 게 있나요.
=처음엔 정말 모든 걸 혼자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좋은 작품은 모두 함께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더 넓게 시야를 갖게 됐달까요. 혼자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편안해졌어요.
-어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요, 배우, 연기라는 것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게 됐던 계기가 있나요.
=<무지개 여신>을 하면서 영화라는 게 얼마나 어렵고, 많은 참을성을 요구하는지 다시 느꼈어요. 영화라는 게 배우로서의 나를 키워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연기란 역할에 생명을 주는 거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책임감을 느껴요.
-2008년 현재 배우 우에노 주리로서 꾸는 꿈이 있나요.
=주변의 추천, 격려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젠 연기가 즐거워요. 매일매일 그렇게 느낍니다. 연기는 이제 완전히 삶의 일부가 됐고 제가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고가 되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냥 그 순간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이후에 내 경험과 감정들을 제 손으로 만들 영화에 담고 싶어요.
-시간이 많이 없겠지만 일을 안 할 때는 주로 어떻게 일과를 보내나요.
=자연을 접하지 않으면 숨이 막히는 체질이에요. 좋은 풍광을 보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 몸 안의 기운이 바뀌는 것 같죠. 그래서 가능하다면 운동을 하거나 교외로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