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알렉상드르 아야] 내가 관객이면 어떤 장면이 무서울까 고민한다
2008-09-17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미러>의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

지난 8월12일 LA 포시즌 호텔에서 <미러>의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을 만났다. <엑스텐션>과 <언덕이 보고 있다>의 고어 미학으로 잘 알려진 아야는 지금 현재 할리우드가 가장 주목하는 호러영화 감독이다. 도대체 슬래셔영화의 감독은 끔찍한 장면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라운드 테이블로 들어선 <미러>의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은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보다 무척이나 침착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원작 <거울속으로>는 언제 처음 보았나.
=3년 전이었나…. 폭스에서 개발 중이던 시나리오를 먼저 접했다. 시나리오 자체는 별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는데,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거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막상 거울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룬 시도가 없었다고 생각하니까 꽤 흥미로웠다. 우리 일상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라니…. 스튜디오와 다시 만났을 때 거울 컨셉을 가지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원작 영화를 참고하라면서 <거울속으로>를 건네주더라. 그때 처음 봤다. 원작의 오프닝이랑 엔딩이 인상적이어서 <미러>에도 그 부분을 그대로 가지고 왔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키퍼 서덜런드를 처음부터 원했나.
=<유혹의 선>에서 키퍼가 연기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긴 코트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그야말로 로맨틱한 영웅 아닌가. <유혹의 선>도 공포영화이기도 하고. 시나리오 파트너에게 캐릭터 이야기를 할 때 <유혹의 선>에서의 키퍼 연기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24> 스케줄 때문에 키퍼가 이 역을 과연 맡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진짜로 그가 합류한다고 연락해왔다. 키퍼와 함께 작업하게 된 것은 최고의 경험이었다. 그는 캐릭터를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했고,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이해했으며 제작과정 내내 내 편에 서서 캐릭터를 옹호해주었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긴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배우가 가지는 비중은 아주 크다. 관객이 그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어야 최대한의 공포감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키퍼는 그 역할을 해주었다.

-다른 장르도 해보고 싶지 않은가.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어떤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에 관심이 많다.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지 않을 법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 만들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장면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드나.
=내가 관객이라 생각하고 어떤 장면이 나오면 무서울까 고민하면서 만든다. 내가 보면서 무서우면 관객도 무서워할 것 같다.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 혹은 예술가가 있다면.
=딱히 바로 떠오르는 예술가는 없는데…. 아, 이번 작품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많이 참조했다. 컴퓨터그래픽팀에 거울 속 악마 이미지 컷으로 그의 작품을 스크랩해서 보여줬다. 영화 작업의 매력 중 하나가 매번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내가 좋아하는 특정한 작가나 작품에 한정시키지 않고 늘 새로운 작품, 새로운 작가들에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미국에서 줄을 잇는 아시아영화의 리메이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미국에서는 직접 배급이 아니라 리메이크의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유럽과 다른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원작 아시아영화를 별로 어렵지 않게 가게에서 빌려다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자막처리, 더빙에 대해 민감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시각에 대해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영화다라고 소개된 <그루지>만 해도 크로넨버그의 <브루드>의 영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나. 며칠 전에 한국영화 <달콤한 인생>을 봤는데 <택시 드라이브>의 흔적이 명백하더라. 아시아영화들은 전 시대 할리우드영화를 나름 소화해서 재해석하고 재창조해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마치 술을 만드는 과정 같다고 해야 하나. (웃음) 그리고 알다시피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대개 가장 좋은, 강한 맛이 나오니까.

-가장 무서웠던 아시아 공포영화는.
=<오디션>. 중간까지 보는데 이게 왜 다들 무섭다고들 하는지 갸웃거리다가 그 지점에 이르니 숨이 턱하니 멈추는 것 같더라. 진짜 무서웠다.

-프랑스 감독으로서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할리우드의 젊은 감독들은 스튜디오의 의견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고집을 피웠다가는 앞으로 영영 다른 작품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않나. 나는 스튜디오가 프랑스 감독을 선택했을 때에는 이런 내 성향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는 상황이 좀 달랐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 여기서 맞지 않으면 그냥 프랑스에서 영화 만들면 되니까. 그래서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보다 좀더 자유롭지 않았나 싶다.

-유럽 감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난감해하다가)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우와, 정말 대단해’라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봤을 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고개를 저으며)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럼 존경하는 감독은 누군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스릴러를 끌어내는 데 있어 그는 누구보다 탁월하다. 단순히 스릴러 장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특히 시간을 확장시키는 듯한 그의 연출 스타일은 정말 대단하다. <드레스드 투 킬>에서 그가 긴장감을 끌어내는 방식은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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