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1979년 베를린영화제의 최대 스캔들
2008-09-09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디어 헌터>
<디어 헌터>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1978)는 흔히 맹목적인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적인 시각을 담은 영화로 소개된다.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입은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이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쓸쓸하게 ‘신이여 미국에게 축복을(God Bless America)’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국가주의에 대한 이 영화의 통렬한 냉소로 읽혔다. 다시 말해 노래는 반어법인 것이다. 차별 받는 러시아계 후손의 청년 노동자들(참전한 세 청년은 모두 러시아계 미국인)이 국가주의의 최면에 휩쓸려, 자신들의 삶을 희생시킨 뒤 깨달은 체념의 순간이었다. 상상도 못했던 역경을 뚫고 나간 영웅으로서의 마이클, 곧 로버트 드 니로의 위상은 이 영화를 통해 더욱 굳건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베트남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진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은 다 기억할 것이다. 마이클의 뺨을 때리는 밉도록 잔인한 베트남 군인들, 그리고 그들을 통쾌하게 처치하는 마이클과 닉(크리스토프 워켄)의 영웅적인 행동들 말이다. 그들 베트남 남자들은 벌레보다 못한 더러운 존재들로 그려진다. 도대체 이렇게 편파적으로 사람을 묘사할 수 있을까? 서로 싸움질을 하는 당사자들인데, 한 쪽은 ‘더러운 놈들’로, 그 반대편은 ‘영웅들’로 그리는 염치없는 태도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베트남 군인들이 마이클의 뺨을 때릴 때, 스크린 밖의 현실에선 얼마나 많은 미군들이 베트남 사람들을 모욕하고 짓밟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디어 헌터>는 개봉한 지 1년 뒤 참가한 1979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최대의 스캔들이 됐다. 옛 소련의 대표들은 이 영화는 미국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악마로 둔갑시킨 사해동포주의에 역행하는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소련은 상영철회를 요구했다. 독일은 문제점을 인식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인 이유로 상영을 금지한다면 그런 행동이 더 비이성적이고 비예술적이라고 반박했다. 예정대로 영화가 상영되자 소련대표부는 영화제에서 철수했다. 그러자 쿠바, 불가리아, 폴란드 등 소련의 형제국가들 대표들도 줄줄이 철수했다. 돌이켜보면 모두 부끄러운 냉전 시대의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남는 사실은, 이 영화는 베트남 관객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점이다. <디어 헌터>에 묘사된 데 따르면, 베트남 사람들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포기하고, 이를 파괴하는 독사와 같은 존재들이다. 과연 그럴까? 제 얼굴에 침 뱉기는 아닐까? 사뭇 영화의 선전효과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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