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쉬운 이야기, 사회성 짙은 메시지, 절제된 촬영이 매력이죠
2008-09-09
글 : 김성훈
배창호 감독, 추천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감상 후 관객과의 대화

“영화의 마지막에 추장이 잭 니콜슨을 안락사하는 장면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여요. 감독님 개인적으로 안락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관객이 질문을 던졌다.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감독의 답변은 영화감상의 방법을 제시한다. “영화는 영화 자체로 봐야 되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큰 주제 안에서 장면들을 봐야지, 작은 것들에 일일이 의미화하고 신경쓰는 건 좋은 감상의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9월8일 오후5시 대한극장 10관에서 상영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배창호 감독이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함께 볼 영화로 선정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로 “이야기가 쉬우면서도 사회성이 강해서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특히,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카메라가 황량한 풍경을 패닝으로 훑어 보여주는데, 이 압도적인 풍경의 정서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해요. 그리고 추장이 욕조를 뽑아 정신병원의 창문을 깨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이자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억눌렸던 감정을 시원하게 폭발하게 해주는 장면이죠.”(웃음)

배창호 감독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처음 본 건 지난 1976년이었다. 당시는 그가 낮에는 회사를, 밤에는 극장을 전전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일을 하고 있어도 영화는 참 많이 봤던 때였어요. 70년대 당시에 외화가 1년에 20편 정도밖에 수입을 안 해서 웬만하면 다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거죠. 직장 다닐 때는 퇴근하고 나서 극장에 갔고, 감독이 된 후에는 마음에 드는 영화가 개봉하면 개봉 첫 날 조조로 찾아봤어요.”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전단지에 적힌 ‘아카데미 수상작’이란 문구에 눈길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중앙극장에 달려가 영화를 본 당시의 배창호 감독은 “이렇게 사회성이 강한 영화가 대박을 내리라곤 상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배창호 감독은 이날 다시 본 영화가 무척 반가운 듯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를 제일 좋아해요. 그때 코폴라가 <대부> 찍고 나서 할리우드에 세대교체가 일어났죠. 그런 다음부터 사회성이 강하고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오늘 본 영화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죠.” 배창호 감독이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점으로 꼽은 것은 촬영감독 하스켈 웩슬러(Haskel Wexler)의 촬영이다. “이 영화는 하스켈 웩슬러가 그때 공산주의였던 체코에서 막 할리우드로 와서 찍은 영화였어요. 그래서 사회주의 사상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 탓에 촬영이 튀지 않고, 절제된 움직임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제작한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사울 자엔츠(Saul Zaentz)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정말 대단한 양반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켄 키치의 원작소설이 서점에 나오자마자 바로 판권을 사버렸는데, 당대 최고의 메이저영화사가 이런 사회적인 작품을 밀어줬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안목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배창호 감독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연출한다면 주인공 잭 니콜슨 역에 누구를 캐스팅 하고 싶을까. 그는 유쾌한 웃음으로 답변했다. “그때 한창 안성기하고 찍었으니깐 안성기가 주인공 맥 머피를 맡아야지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박중훈이가 하던가.”(웃음)

사진 함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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