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는 실패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바로 그 실패를 새로운 삶의 밑거름으로 삼을 줄 아는 자들의 ‘유쾌한’ 성장담이기도 하다. 교육 과정이 힘겹기로 소문난 서울액션스쿨에 입학해 악으로 깡으로 6개월을 버텨 총 15명이 수료한다(입학생은 총 36명이었다). 그 15명 중 한명이 <우린 액션배우다>를 연출한 정병길 감독이고,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그와 함께 서울액션스쿨을 수료했던 8기 동기생들이다. 촬영을 시작할 무렵, 스턴트맨으로 현장에 남아 있는 이는 신성일, 곽민석, 권기덕 이렇게 총 3명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신성일과 곽민석이 더 이탈하며, 권기덕만이 스턴트 세계에 살아남는다. 하지만 스턴트맨 일을 접었다고 해서 그들이 배우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액션배우다.
다큐 속 픽션
<우린 액션배우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그들이 스턴트맨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를 제시할 때이다. 중간중간 서울액션스쿨 면접 당시의 화면을 뒤섞고, 그 과정에서 왜 스턴트맨이 되려는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정병길 감독은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스턴트맨 입문 계기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마치 운명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에는 픽션처럼 보이는 몇몇 사건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길을 가던 권기덕이 갑자기 차에 치이는 자동차 사고 장면이다. 조연출은 권기덕과 인터뷰하던 중 스턴트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데, 대답을 미루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권기덕이 맞은편에서 오던 차에 치여 쓰러지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이 장면은 연출된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차와 부딪혔던 권기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서, 조연출에게 말한다. 자신은 잘 안 다친다고, 한 5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다치지 않더라고, 그래서 이것도 재주다 싶어서 스턴트일을 하게 됐다고. 그런데 흥미롭게도 권기덕을 들이받은 차에는 신성일이 타고 있었고, 그 역시 자신이 스턴트맨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동일하게 이야기한다.
<우린 액션배우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스턴트 장면은 동기생들이 다른 작품의 촬영을 위해 연기하는 것을 정병길 감독이 빌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픽션으로 처리된 이 스턴트 장면에서만큼은 다른 어떤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우린 액션배우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자신들의 스턴트 능력을 보여준다(물론 곳곳에 엉뚱하기 그지없는 전세진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신체 건강한 한국 남성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몸놀림을 스턴트랍시고 보여주지만, 미안하게도 그의 스턴트는 스턴트가 아니다. 다만 웃길 뿐이다). 달리 말해 그들은 이 장면에서는 연기자로서 스스로를 보여주고 있는데,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에서 이처럼 갑작스럽게 픽션(연기)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입문 계기를 고백하는 이유는, 스턴트맨이라 불리는 스스로를 또 하나의 ‘액션배우’라고 규정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기만큼 자신을 배우라고 커밍아웃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또 있겠는가.
대상에 대한 한없는 애정
물론 <우린 액션배우다>가 전반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스턴트맨의 고난함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와이어에 몸을 매달기도 하고, 차가 뒤집히는 위험 속으로 몸을 내던지기도 하며, 문신 같은 상처로 온몸을 도배해야 한다. 심지어 시퍼런 눈과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더 상태가 나쁜 친구를 병문안 가기도 한다. 권기덕이 고백하듯, 그들도 ‘맞으면 아프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당연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그 누구도 스턴트의 고난함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인대와 뼈를 대가로 완성된 영화의 장면을 이야기할 때면 자신들의 부상마저 신나서 이야기한다. 고 지중현 무술감독의 장례장면은 큰 슬픔이 배어 있지만, 이 작품이 코미디영화 못지않은 웃음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고난함을 그들이 선택한 직업의 일부로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울액션스쿨 8기 수료생들 대부분은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신들이 꿈꿨던 스턴트맨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기로 선택한다. 영화는 그 선택의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듯, 그 선택에 대해 특별히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 이유를 캐묻기보다는 선택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동기생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보려 한다. 서울액션스쿨의 졸업영화를 준비하던 이들의 모습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그들이 새로운 꿈을 품고 또 다른 출발점에 설 무렵 끝을 맺는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곳곳에서 투박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점으로 남지 않고 영화의 장점으로 흡수되는데, 이는 대상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액션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액션을 사랑하는 스턴트맨, 아니 ‘액션배우’(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