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바딤 페렐만] “상실, 슬픔, 죽음, 기억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다”
2008-09-24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인 블룸> 감독 바딤 페렐만

<인 블룸>은 <모래와 안개의 집>(2005)으로 단숨에 할리우드의 기대주로 떠오른 감독 바딤 페렐만의 두 번째 작품이다. 자본주의와 가족주의, 이민자들과 하층계급의 현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끝을 보여주는 <모래와 안개의 집>은 사회·정치적인 문제의식을 예술적으로 재현하는 감독의 재능이 빛나는 영화였다. 지난해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깜짝 상영작으로 소개된 <인 블룸> 역시 버지니아 총기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극단적 현실을 뼈대로 한 일종의 심리스릴러다. 상실과 공포, 슬픔과 죄의식 등 살아남은 자의 심리에 초점을 둔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스며드는 구조를 취한다. 현실의 비극 한가운데에서 시작하지만 유려한 편집과 상상력과 영상미로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그의 연출력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바딤 페렐만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인 블룸>에 대한 <씨네21>의 질문에 답해왔다.

-<인 블룸>은 로라 카시스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어떤 점이 당신을 매혹시켰나.
=카시스케의 소설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아름다움이 있다. 또 그녀가 제시하는 결말은 언제나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 매혹되었다.

-이 영화는 교내 총기난사사건을 다룬 버지니아 총기살인사건이나 <엘리펀트> <볼링 포 콜럼바인>을 떠오르게 한다. 이 비극적 사건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삶은 연약하고 선택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관계 역시 가치있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마지막 반전이 없었다면 <인 블룸>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혔을 것이다. 결말은 원작을 따른 건가. 반전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나에겐 원작의 결말이 어쩐지 너무 시니컬하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그 선택이 초래할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장면을 넣었고, 사랑하는 친구와 그 친구의 행복한 삶을 위해 결국 여주인공이 과감한 선택을 내리는 쪽으로 결말을 바꿨다. 지금도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는 영화의 구조가 인상적이다. 각색을 할 때나 편집과정에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선택을 했나.
=두개의 시공간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과거와 미래는 결국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다이애나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결국 모두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서 가져온 자료들로 조합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모래와 안개의 집>도 그랬지만, 당신의 영화는 늘 물질적인 현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의 재현은 사실주의적이고 거친 방식이 아닌 과감한 편집과 영상미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모래와 안개의 집>에는 안개의 이미지가 영화 전반을 흐르며, <인 블룸>에서는 물이 그렇고 곤충들이나 꽃 등과 같은 생명체가 강한 이미지로 인서트되곤 한다.
=자연은 <모래와 안개의 집>에선 큰 스케일로, <인 블룸>에선 더 섬세한 스케일로 인용했는데 의도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나는 내러티브의 폐쇄적인 느낌을 자연의 이미지를 삽입함으로써 좀더 열린 느낌으로 바꾸고 싶었다. 또 자연의 이미지를 마치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사용해보고자 했다. 즉, 극중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자연의 상징적 이미지들이 코멘트를 하는 것이다.

-소재는 다르지만, 당신의 작품들은 모두 상실, 슬픔, 죽음,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맞다. 상실, 슬픔, 죽음, 기억은 모두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앞으로도 계속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다.

-우마 서먼과의 작업은 어땠나.
=우마 서먼은 직업관이 매우 투철한 배우이며 연기자로서의 감성을 타고났다. 그녀와 작업하는 것은 내겐 즐겁고 보람된 일이었다.

-지금 어떤 작품을 작업 중인가.
=구상 중인 작품 두편이 우연히도 모두 리메이크작이다. 하나는 잘 알려진 대로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이고 다른 한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영화인 <폴터가이스트>의 리메이크다. <파이란>은 영화의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고 파이란이 카티야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아 여성으로 바뀐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이다. 송 감독에게 오리지널의 인물과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 바 있다. <폴터가이스트> 리메이크판은 내가 만드는 버전이 좀더 심리적이고 인물 중심적인 공포 스토리가 될 것 같다.

사진 매그놀리아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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