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인터뷰] <미러>의 거울의 저주와 싸우는 남자 벤 카슨
2008-09-23
글 : 김도훈
“글자를 반대로 읽으려니 미치겠습니다 그려”
<미러>

-(우물쭈물)
=왜 그렇게 우물쭈물하십니까.

-아, 그게 말이에요. (부들부들)
=왜 그렇게 부들부들 떠시는 거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LA 시청에서 도시를 여러 번 구제한 데 감사하려고 길 이름 하나를 잭 바우어라고 개명했대요. 근데 평범한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계속 죽더랍니다. 왜냐하면 잭 바우어를 거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저는 가늘게 오래 사는 게 인생의 목표라서요. <24> 시리즈를 보고 났더니 오늘 인터뷰 정말 무서워요.
=그렇다면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잭 바우어가 아니거든요.

-네? 잭 바우어가 아니라고요? 키퍼 서덜런드처럼 생기셨는데 잭 바우어가 아니라니요.
=키퍼 서덜런드가 잭 바우어만 연기하는 건 아니거든요. 얼마나 많은 영화에 출연했는데요.

-영화요? 무슨 영화요? 키퍼 서덜런드가 <24> 말고 어디 출연했는데요?
=키퍼 서덜런드도 80년대에는 브랫팩의 일원이었다고요. 조엘 슈마허의 <로스트 보이즈>나 <유혹의 선> 같은 걸작을 기억 못하시다니. 게다가 키퍼 서덜런드가 90년대 초 줄리아 로버츠의 약혼자였다는 사실은 기억 안 나십니까. 금세 파혼당하긴 했지만. 빌어먹을 줄리아.

-<로스트 보이즈>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만 <유혹의 선>이 걸작이라는 사실은 오늘 또 처음 알았네요. 뭐 하여간 당신이 잭 바우어가 아니면 누구란 말입니까.
=저는 <미러>의 벤 카슨입니다.

-어머. 그랬군요. 닮아서 착각했습니다. 카슨씨는 극중 직업이 백화점 경비원이었죠.
=원래는 형사였습니다.

-거 보세요. 원래는 잭 바우어 맞네.
=잭 바우어는 대테러 진압요원입니다. 형사가 아니에요.

-그거나 저거나 사람 잡는 직업이라는 데는 틀린 게 없죠 뭐. 여기서 ‘잡는’은 ‘캐치’이기도 하지만 ‘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염두에 두시고요. 어쨌든 잭 바우어와 마찬가지로 카슨씨 주변 사람들도 적잖게 죽었잖아요. 심지어 여동생은 자기 주둥이를 제 손으로 찢어서 죽고. 아들도 카펫 웅덩이에 빠져서 죽을 뻔했잖아요.
=그게 다 제 책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요. 애당초 시내 한가운데 버려진 백화점 야간경비원 따위에 지원한 게 잘못이었죠. 불탄 백화점의 거울이 하나도 깨지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이상한 낌새를 못 채셨단 말입니까. 확실히 잭 바우어는 아니군요. 잭 바우어는 열쇠를 놔둔 곳을 잊어버리면 자기 자신을 고문해서라도 열쇠의 위치를 알아내는 사람 아닙니까.
=저도 제 할 일은 다 했습니다. 결국 거울의 저주도 풀고 가족의 생명도 구했고요.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마지막에 자기 혼자 거울 속 세상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저라면 정말 절망적이었을 것 같아요.
=그랬죠. 제일 힘든 건 글자를 반대로 읽는 거. 갑자기 왼손을 사용하려니까 그것도 꽤 어렵던데요. 할 수 없죠. 등신 같은 원작의 엔딩이 그 모양이었으니 리메이크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은 제발 호러영화 판권 좀 수출하지 마세요.

-그 말은 제작자 로이 리씨에게 직접 전화로 전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저희야 어쩔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그쪽에서 돈 주고 사가겠다는데 한국 제작자들이야 질이 좋건 나쁘건 일단 팔고 봐야죠 뭐.
=이젠 가봐야겠습니다. 24시간 안에 해결할 문제가 있어서요.

-엥. 아깐 잭 바우어 아니고 벤 카슨이라면서.
=바우어나 카슨이나 그게 그거죠. 여튼 지금 가지 않으면 24시간 뒤 LA에 떨어질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바쁘시면 잭 라이언을 불러도 좋을 텐데.
=여하간 저를 만나고 싶으면 거울을 보고 세번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벤 카슨, 벤 카슨, 벤 카슨?
=아뇨. 캔디맨, 캔디맨,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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