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전영객잔] 한국영화의 희망을 보다
2008-10-02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최근 한국영화에 신선한 에너지를 선사한 <영화는 영화다>와 <우린 액션배우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감지하기 어려웠던 에너지와 재능을 두 영화에서 본다. <영화는 영화다>와 <우린 액션배우다>이다.
<영화는 영화다>는 장훈 감독의 데뷔작이다. 원작은 김기덕 감독이 썼고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떤 전환을 보여준다. 발상의 전환이다. 몸싸움으로 점철할 수 있는 액션영화에 어떤 자기 성찰성(self-reflectivity)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더니스트 영화의 미로 만들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CF들이 앞다투어 도입하는 자의식적이며 젠체하는 과잉 스타일화도 아니다.

적절한 각색과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영화는 영화다>

이 작품은 액션영화라는 재현의 장과 ‘리얼한 액션’의 현존의 틈바구니에서 발생하는 웃음과 비애 그리고 행위와 행동을 들여다본다. 이 틈새에서의 경합을 매우 그럴듯하게 만드는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소지섭(이강패)과 강지환(장수타)이다. 이강패는 이름대로 중간보스 깡패이고 강지환은 액션배우다.

이강패는 장수타의 팬이다. 둘은 우연히 룸살롱에서 만난 적이 있다. 수타로 말하자면 스타가 되지 않았더라면 강패와 동급의 깡패가 되었을 사람이다. 본인의 말이다.

액션영화를 찍고 있는 장수타는 상대방 배우가 연기에 ‘몰입’해 자신을 진짜로 세게 때리자 응징성 대응을 한다. 이런 일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상대역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수타가 직접 강패를 섭외한 것이다. 강패는 ‘토목국가’ 대한민국의 명성에 어울리는 아파트 개발 사업에 개입하고 있다. 감옥에 갇힌 자신의 보스를 대신해서다. 세명의 아랫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강패는 한때 단역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다. 다른 영화의 깡패 묘사와 달리 이 영화는 만일 깡패에게 배우로 표상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 있을 경우’를 가정한다. 소지섭은 그런 면에서 좋은 선택이다. 그의 얼굴과 시선은 고전에 가까운 특정한 부류의 동경을 잘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정해지지 않은 임시 거처로 돌아가 양말을 빨아 넌다든지 하는 일상적 세밀함을 어색지 않게 연기한다.

실제 깡패가 깡패영화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장르영화에 대한 부분적 ‘해체’는 종종 관객의 웃음으로 번역되어 나온다. 나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부분의 묘미를 놓치지 않고 즐긴다. 예컨대 깡패와 스타의 폼나는 스타일은 구겨지고 망가진다. 남성적 과시는 현실법칙, 영화법칙 아래서 힘을 쓰지 못한다.

다른 많은 깡패영화들처럼 부동산에 얽힌 비리를 다루고, 믿지 못할 보스와 부하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 <영화는 영화다>는 동시대 액션영화와 함께한다. 하지만 현실법칙보다는 깡패영화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법칙을 더 공들여 보여준다. 물론 위의 현실도 현실의 지표성을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 구성된 현실이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영화, 영화다.

예컨대 수타와 함께 액션영화를 찍고 있는 봉 감독은 영화에 진짜 깡패라는 실물이 들어오자 연기의 핍진적 현실성과 진짜의 실재에 닿지 못하는 현실성에 당혹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긴장에 만족한다. 이 과정에서 성숙하는 것은 강패다. 영화적 세계에 설득되어 그는 현실원칙을 질문하고, 이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선택해 인생을 달리 경험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배우들은 이 두 가지 원칙 어디에도 별로 속하지 않고 겉돈다. 그리고 두 남자배우의 명성에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을 기용해, 그 불균형이 시사하는 바의 의미를 저절로 드러낸다. 하지만 액션영화에서 과대평가된 저속과 숭고를 줄다리기하는 남성성에 대한 비아냥거림은 있다. 그러면서도 액션영화의 승부수를 던지는 시퀀스를 정성스럽게 마련하는데, 인천공항 가는 길의 영종대교가 뒤로 보이는 갯벌에서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임권택 감독의 <애꾸눈 박>에서 박노식과 최봉이, 강가에서 대낮부터 석양까지 벌인 한판 승부의 유형을 환기시키는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승리라기보다는 둘의 소진에 이르는 승부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싸움이 우정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를 보고 약간의 낙관을 한다. 신인감독이 연출 수업을 했던 감독의 원작을 취했으나 자신의 재능과 욕망이 원하는 바를 적절하게 표현하면서 그것을 영화적으로 각색해냈고, 제작 자체도 많지 않은 예산으로 꾸려낸 바가 보이기 때문이다. 근심이 늘어가는 한국영화계에 어떤 해법이 될 만한 영화다.

포복절도한 웃음 속에 세심함과 절통함이 살아있는 <우린 액션배우다>

(※약간의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이 다큐는 감동적이다. 농담으로 시작해 액션스쿨, 스턴트맨의 세계의 일상과 희비극을 통절하게 보여준다. 정병길 감독과 이 다큐에 참여한 권귀덕, 곽진석, 신성일, 전세진, 전문철 등 서울액션영화스쿨 8기들의 오디션 장면부터 이후의 활동까지를 따라간 이 작품은 스턴트, 액션배우에 관한 진술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주류에서 벗어났으나 꿈과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매버릭(maverick)들에 대한 헌사다. 강추!!

영화의 엉뚱함은 참으로 생뚱스럽고 세속적이고 일상적이지만, 그것을 지탱시키고 있는 현실원칙과 영화원칙은 작금의 대중문화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정성을 담은 진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에겐 영화가 현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위의 <영화는 영화다>와 더불어 동시대 액션영화의 묘한 대위법을 구성한다.

그런데 뒤집어진다. 이 다큐에는 온통 ‘뒤집어지는’ 장면이 많다. 난 전세진이라는 인물이 가장 ‘웃긴다’. 그의 등짝에는 호랑이와 용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400만원가량의 문신이 활개치고 있는데 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문신 스토리를 들은 것 같다. 이 허풍쟁이는 제주도에서 자신이 말 좀 탔다는 자가 전설을 만들어 액션스쿨에 입학하는데, 점쟁이를 찾은 뒤 문제의 문신이 하나씩 새겨지는 과정은 포복절도다. 뭐, 말에 누워 찍은 사진도 괜찮다.

이 액션스쿨 8기 출신들 중 권귀덕만이 차를 정말 잘 뒤집는 최고의 ‘카스턴트 맨’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꼬불꼬불 그러다가 종횡무진 달려가던 영화는 그와의 이런 내용의 통화로 끝난다.
“미안, 차 하나 뒤집고 금방 전화할게.”
영화평론을 하는 사람으로서 글의 말미가 오기 전 이 다큐에서 추모하는 지중현 무술감독에게 늦은 조의를 표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촬영 중 통나무가 트럭으로 굴러떨어지면서 사고를 당한 그는 생전 어느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겸손하고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액션을 구사하던 스턴트맨들이 지중현 무술감독의 죽음 앞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애도하는 모습이나 곽진석과 신성일이 평소 그가 좋아하던 드렁큰 타이거의 음악을 틀어주는 장면은 애달프다.

포복절도 절통한 이 다큐는 스턴트맨의 존재를 가리킴으로써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것, 빨리 지나쳐버리는 것을 보게 하는 ‘어떻게 영화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영화 독본이기도 하다. 특히 <짝패>에서 무술감독 정두홍의 활약이나 <놈놈놈>에서 무국적 비적, 일본군으로 지나갔던 사람들의 액션을 스턴트맨에 맞추어 리플레이함으로써 우리에게 좀더 참을성있는 태도로 영화를 보게 만든다. 말할 나위 없이 주연과 조연, 단역, 엑스트라, 스턴트 등처럼 계층, 계급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세상을 다시 곱씹게 함은 물론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여고에 가서 이들이 무술 시범을 보이는 장면인데, 여고생들은 환호하고 사진 찍는다. 그러다 요구를 한다. ‘윗옷을 벗어보라는 것이다.’ 아직 미성년인 이들 앞에서 물론 우리의 액션배우들은 옷을 벗지 않고, 이들이 성장하면 그렇게 할 거라고 대답한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감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이 다큐의 시침 뚝 뗀 내레이션을 맡은 사람이 여성이고 인터뷰어로 등장하는 조감독이 여성이다. 영화에서는 자신이 주연도 하고 감독도 하겠다며 엄청 까불어대는 자기 재현을 해내는 감독이지만 재능 현란하고, 미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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