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새로운 흥분에 들떠 있었다. 자신을 놀라게 하는 아시아영화들이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게 아시아영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운으로 약동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영화에 대한 예찬이 대단해서 “정말 다 좋다. 특히 <100>은 하도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녀서 벌써 매진됐더라. (웃음) 필리핀은 최근 워크숍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는데, 필리핀 시네말라야영화제의 경우 연초에 시나리오를 받아서 그 당선작에게 제작비 지원을 해 완성하게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뛰어난 신인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야심차게 준비한 ‘아시아 슈퍼히어로전’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만만찮았다. 프린트 보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아 “영어자막이 없어서 우리가 넣는 건 기본이고, 다른 나라의 필름 아카이브까지 뒤지고 인도네시아 영화의 경우 우리가 직접 새 프린트를 뜨기도 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래도 그런 노력 때문인지 ‘아시아 감독들의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내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대로 가져가볼까?’하며 군침을 내는 아이템이 됐다. 아쉬움이라면 <동사서독 리덕스>의 임청하 초청이 막판 무산된 점이다. “왕가위의 택동영화사에서 임청하의 대만 데뷔작과 은퇴작인 <동사서독 리덕스>를 함께 묶어서 출시할 계획이 있는데, 파파라치들의 사진이 아니고서는 사실 15년만의 첫 공식 등장이라 부산과 뉴욕 둘 중에서 저울질을 했다. 그런데 막판에 뉴욕영화제로 마음을 돌려 무산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렇게 기쁨과 아쉬움을 동전의 양면처럼 쥔 채로 올해 메뉴의 성과를 기다려보겠단다.
추천작
<100>을 제외하자면 필리핀영화 <제이>와 <고해> 역시 강력 추천이다. 두 영화 모두 미디어의 왜곡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제이>는 게이인 교사의 장례식을 촬영하는 리얼리티쇼의 부조리함에 대해 말하는 영화고, 초저예산영화 <고해>는 허구와 왜곡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진실보다 중요한 건 양심과 도덕이라는 정말 놀라운 반전을 숨겨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