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Sparrow
두기봉 | 홍콩 | 2008년 | 86분 | 아시아영화의 창 | 20:30 프리머스1, 6
천변만화하는 두기봉의 세공술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걸작. <흑사회> 연작 혹은 <익사일>처럼 그의 장기인 총알발레를 펼치는 영화는 아니지만, 마치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혹은 그가 누아르영화를 만드는 가운데 종종 위가휘와 공동으로 연출했던 코미디영화를 보는 듯 시종일관 경쾌한 무드를 연출한다. 참새를 키우며 사진 찍기가 취미인 케이(임달화)는 거의 소매치기의 지존이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 일당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모의 여인(임희뢰)이 은근슬쩍 접근해오고, 모두가 그에게 엮인다. 한 늙은 갑부의 정부인 그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 케이 일당은 그들의 소매치기 실력을 이용해 그를 돕고자 한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갑부를 모시는 ‘어깨’들의 실력도 만만찮다.
홍콩 섬 북부지역을 달리는 자전거와 새장, 그리고 낡은 흑백 카메라는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식민지 시대 홍콩의 정경을 담아낸 것처럼 순식간에 백인 관광객을 사냥하는 소매치기들의 율동은 거의 시적인 감흥을 자아낸다. 그들은 매일 아침 한 식당에 모여 볶음밥을 먹고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거기서 한 여인에게 휘말려 각자 부상을 입고 모인 우스꽝스런 그들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비웃는 것은, 그 자리에서 몇 십년간 장사를 했을 주방장이다. <참새>는 한 여인의 음모로 시작되지만 그것은 팜므파탈의 서사가 아니라 두기봉이 사랑해 마지않는 홍콩을 둘러싼 사람들의 웃음이고 공기의 흐름이다. 중국 전통음악이 가미된, 물 흐르는 듯 이어지는 음률을 타고 펼쳐지는 소매치기 행각은 거의 무협 고수들의 춤사위다. 두기봉의 제자 유내해가 <천공의 눈>(2007)을 통해 보여줬던 홍콩 도심 도둑들과 그들을 쫓는 경찰 추적조의 숨 막히는 이야기는 그렇게 확장되고 완성된다. 비 오는 밤거리에서 삼삼오오 우산을 펼쳐들고, 입 안에 면도칼을 하나씩 숨기고서 벌이는 고속촬영의 소매치기 대결은 그야말로 명불허전. 두기봉처럼 순수한 의미에서 영화적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