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국영화박물관 전시품 기증 릴레이 56] <증언> 촬영용 콘티뉴이티
2008-10-06
글 : 최소원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램팀)

<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56번째는 노인택 미술감독이 기증한 <증언> 촬영용 콘티뉴이티입니다.

1976년 ‘국책영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유현목 감독은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는 추상적 개념이나 과거지사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일이다”라며 영화인과 괴리된 당대의 영화정책을 비판했다. 69년을 정점으로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치달았던 1970년대의 한국영화계는 외화수입쿼터를 얻기 위해 영화를 제작하는 기형적인 구조와 함께 사전·사후 검열, TV 보급으로 침체의 깊은 수렁에 빠졌던 시기이다. <증언>은 1973년 4월 ‘한국영화의 육성과 발전’을 내걸고 출범한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첫 번째 국책영화다. 휴전 25주년 기념 ‘반공정신 강화’라는 정부 시책에 맞추어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한 장관급 회의에서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전쟁영화 2편 <전쟁과 노인>(1962), <전쟁과 여교사>(1966)를 연출해 낙점되었던 임권택 감독은 6·25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반공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긴 했지만 <증언>의 연출 제의가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엄청난 물량 지원과 함께 ‘촬영 협조’라는 작전 명령을 받은 탱크 대대와 연대 본부 병력이 촬영현장에 주둔했다. 임권택 감독은 스탭들과 함께 촬영 내내 내무반 생활을 하며 영화진흥공사가 건네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나리오를 고쳐가며 작업했다. 여름 안에 끝내야 하는 시간 제약과 대대적인 지원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무척 힘든 작품이었다고 회고한다.

<증언>의 미술감독 이봉선은 일제시대에 백화점 미술부에서 일했고, 전쟁기에는 대구에서 국극과 악극 무대미술을 했다. 전후 복구가 한창일 때에는 서울의 백화점 인테리어를 도맡아했다고 한다. 만주에서 한형모 감독을 만난 것을 인연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47년 계몽영화협회의 광복영화 <삼일혁명기>(1947)와 <윤봉길 의사>(1947)를 시작으로 <운명의 손>(1954), <자유부인>(1956), <인생차압>(1958), <김약국의 딸들>(1963) 등 1980년까지 260여편의 미술을 맡았으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그중 노인택은 <증언>에서 특수미술감독을 맡았다. <증언>은 한강 다리가 끊기는 장면, 전투기 공중전, 융단 폭격 장면 등에서 미니어처 촬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도극장에서 개봉했고 정부차원의 대대적인 동원에 힘입어 23만 관객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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