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이다. 오시이 마모루가 돌아왔다. 물론 그동안 오시이 마모루가 영화를 만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치구이시 열전> 등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동거를 실험해왔고 국내의 국제영화제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수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든 건 4년만이다. 그 영화 <스카이 크롤러>가 베니스와 토론토를 거쳐 지금 부산에서 상영한다. 원작자 모리 히로시가 “나의 모든 작품들 중 영화로 옮겨지기에 가장 어려운 작품”이라고 예상했지만 오시이 마모루는 훌륭하게 그걸 영화로 옮겨낸다. 다름 아니라 모리 히로시의 인정이다. 인간들의 모든 잔인한 전쟁이 끝난 근미래의 세계. 하지만 전쟁에 대한 참혹함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은 쇼로 전쟁을 한다. 양편의 회사가 있으며 두 회사에 속한 조종사들은 복고풍 프로펠러 비행기를 몰고 나가 서로 싸우다 죽는다. 그 장면은 방송으로 늘 중계되며 사람들은 그 전쟁 쇼의 중계를 보며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두 회사 중, 한 쪽에는 티처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어른 조종사가 버티고 있다. 그 반대편에 키르도레(Kildren)라 불리는 조종사 집단이 있는데 주인공 유이치, 쿠사나기 등이 여기 속해 있다. 키르도레는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며 그들만이 조종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 같이 데자뷰를 겪고 있다. 무엇이든 어디선가 본 것 같고, 이미 한 것 같은 경험을 반복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죽는다 해도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으며 다시 전쟁 쇼에 나가야 한다. 불사신인가? 그렇지만 자라지 않는 불사신. 영원토록 같은 나이를,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 오시이 마모루는 이 해괴한 이야기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일단 오시이 마모루가 선사하는 공중전 묘사는 그야말로 3차원적인 시점과 속도감으로 아찔하다. 여기에 가와이 겐지의 음악이 더해지면 여기는 거의 신공의 세계다. 오시이 마모루는 프로덕션 노트에서 “공중전에 관한 한 미야상(미야자키 하야오)을 이길 자신이 있다”고 써놓았을 정도다. 그러나 오시이 마모루는 단순한 비주얼리스트가 아니다. 애니메이션의 상상적 세계가 얼마나 철학적 화두를 끌어안을 수 있을지 몸소 보여준 영화의 대가다. 영화 속에는 그의 의중을 대변하는 대사가 있는데, 주인공 요이치는 마지막 출격을 나서며 나직하게 내레이션을 남긴다(요이치의 목소리 연기는 일본의 배우 카세 료가 맡고 있는데 시종일관 낮게 깔린 그의 음색은 세상 끝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고 멋지다). “매일 걷는 그 길의 이면을 너는 바꿀 수 있다. 그 길이 같은 것일지라도 너는 여전히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뜻일까?”
오시이 마모루는 “이것(이 내레이션)이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내 영화의 주제이며 전언이다”라고 밝힌다. 여기에는 확신이 아니더라도 소망이 있다. 매일 지루하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에서조차 새로움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언이 있다. 그런데 그게 확신이 아니라 질문의 형태로 있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삶을 무료해하며 지겨워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 같더라도 다른 길을 꿈꾸어야 한다고 보내는 전언. 하지만 오시이 마모루는 꼰대가 아니다. 그는 “나는 젊은이들에게 정의라는 텅 빈 의미 또는 상투적인 격려를 주길 원하는 게 아니”라고 못 박는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확신이 아니라 질문의 형태인 이유다. 때문에 이 영화는 무수한 모호함과 질문의 구조로 점철되어 있다. 이를테면 키르도레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지정되는 것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누가 키르도레가 되어야 하고 누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키르도레는 죽어서도 불사신처럼 약간의 변형을 거쳐 되돌아오게 되는데 그럼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돌아오게 되는 것인가. 심지어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키르도레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할 때도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큰 틀을 던지고 그 안의 많은 부분을 비운 다음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그게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흥미진진하다. 티처로 대변되는 어른 조종사와 키르도레로 대변되는 아이들이 대적할수록 이 영화의 질문은 늘어만 간다. 오시이 마모루는 질문의 비행기를 몰고 다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