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고다르와 만난 건 행운이었다
2008-10-06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빅토리아>의 안나 카리나 감독

누벨바그. 이 단어를 입에 머금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바로 안나 카리나의 얼굴이다. <국외자들> <미치광이 삐에로> <비브르 사 비>같은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속에서 카리나는 달리고 춤추고 담배를 피우고 몸을 팔고 남자를 죽였다. 그녀로부터 누벨바그와 새로운 영화적 여성상이 탄생했던 것이다. 예순이 넘은 시대의 아이콘 안나 카리나는 올해 뉴커런츠 심사위원장과 <빅토리아>라는 신작의 감독으로 부산에 왔다. <빅토리아>는 롤리타스라는 듀오 가수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빅토리아라는 여인과 함께 콘서트 투어를 떠난다는 내용의 저예산 로드무비다. 안나 카리나는 "<빅토리아>가 월드 프리미어로 부산에서 첫 공개되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며 아줌마처럼 껄껄 웃었다. 카리스마 대신 예술가의 자유로 가득한 웃음이었다.

-부산에 처음 온 소감은 어떤가.
=부산이라는 도시가 작은 해변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수백만명이 사는 이렇게 멋진 도시인지는 몰랐다. 어제 GV때 보니 대부분의 관객들이 스무살도 안되어 보이는 젊은 층이더라. 게다가 아침 아홉시에도 상영관이 꽉 차는걸 보고 정말 멋진 장소라는 생각을 했다.

-당신이 뉴커런츠 사상 첫 여성 심사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오. 몰랐다. 미스터 킴(동호)에게 브라보!(웃음)

-고다르와 누벨바그가 현대 영화의 모든 것을 이룩한 탓에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는 게 힘들다는 불평들도 많다.
=고다르를 만난 건 내게는 행운이었다. 당시 그는 열살 연상이었다. 그와 함께 시네마테크를 다니고 에릭 로메나 자끄 리베뜨 같은 감독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그는 불어도 가르쳐줬다(편집자: 안나 카리나는 덴마크 출신이다). 누벨바그 운동은 영화가 고전주의에서 수정주의로 넘어가는 측면에 있다. 그러나 누벨바그가 고전주의를 넘어섰듯이, 지금의 영화가 새로운 단계로 넘어서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저 진정으로 자신에게 와닿는 영화를 만들면 된다. 그래서 고다르는 여전히 고다르고, 트뤼포는 여전히 트뤼포다.

-누벨바그 영화에 출연하다가 다른 영화들을 찍는게 어렵진 않던가.
=어렵지 않았다. 고다르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부터 이미 다른 감독들 영화를 작업하기 시작했으니까. 비스콘티, 파스빈더, 폴커 슐렌도르프 같은 감독들 영화에도 출연했지 않나. 나는 이미 그 시절부터 누벨바그와 다른 영화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다르와 작업하는 게 사실은 제일 어렵다. 누벨바그 영화들의 촬영이 간단하다고? 절대 아니다. 하나하나의 숏이 모두 복잡한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진다. 고다르는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 때문에 대사를 5분안에 외워야만 했다. 그리고 고다르가 내게 처음으로 영화를 가르친건 아니다. 이미 14살때부터 덴마크에서 영화를 찍었다.

-<빅토리아>는 당신의 두번째 감독작이다. 여성 감독으로 활동하는데 힘든 점은 무엇인가.
=내가 지난 1973년 <비브르 앙상블>(Vivre ensemble)을 감독한 뒤 프랑스 영화의 대표격으로 칸영화제에 갔을 때, 사람들은 여성감독이라는 존재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게다가 배우가 왜 감독이 될 수 없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배우는 직접 카메라 앞에서 몸으로 부딪히기 때문에 오히려 조감독 출신보다더 더 영화를 잘해낼 수 있다.

-요즘 영화들은 거대한 쇼처럼 만들어지고 팔린다. 지금 영화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글쎄. 요즘도 좋은 영화는 많다. 미국영화가 심지어 칸영화제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시대지만 파리의 소극장에는 지금도 전세계에서 온 수많은 작가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나는 비관적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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