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마르티네즈 감독의 영화 <100>은 필리핀판 <버킷 리스트>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조이시는 의사로부터 자신이 암 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날로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메모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메탈로 된 관을 알아보러 가고, 평소에 바빠서 할 수 없었던 파스타요리를 하고, 길거리의 낯선 남자에게 키스를 하는 등 그녀의 특별한 ‘기행’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죽음이 가까워오자 그녀는 자신의 삶과 주위를 둘러본다. 데뷔작으로 부산을 처음 찾은 <100>의 크리스 마르티네즈 감독을 만나보았다.
-당신은 영화감독, 작가, 연극연출가, 배우까지 다재다능하다.
=17살 때부터 소설을 썼다. 그리고 대학 때 비즈니스를 전공하면서 극단에서 연극을 했었다. 졸업 후에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연극연출가로 활동했다. 29살 때, <신부파티>라는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필리핀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 같다.
-영화 <100>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작년에 대학시절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친구, 제자, 가족들이 모여 추모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추모제가 엄숙하게 진행되지 않고 가면을 쓰고, 여장을 하는 등 축제처럼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슬프면서도 즐거웠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였고, 그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시나리오로 써내려갔다.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의 할리우드 영화 <버킷 리스트>와 설정이 비슷하다.
=(웃음) 시나리오는 작년 8월에 처음 구상했다. 그리고 다음달에 열린 시네말라야 영화제에서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다. 그 후, 한창 촬영하고 있는데 필리핀에서 <버킷 리스트>가 개봉되었다. 촬영이 끝나고 그 영화를 봤는데, 우리 영화와 2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더라. 첫 번째는 <100>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 <버킷 리스트>에서 잭 니콜슨은 억만장자지 않나. 반면, 우리 주인공은 중산층 일반인이다. 두 번째는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주인공의 연령대를 어린 나이로 설정하면서 좀 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남성감독으로서 여성캐릭터를 묘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여자형제가 2명이나 있는데다가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또한, 시나리오 작업 때 평생 독신으로 지낸 이모가 불치병으로 돌아가셨다. 이모가 투병할 때 나를 비롯한 조카들이 그녀를 간병하였다. 그녀 곁에서 지켜본 것이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번 영화제에서 필리핀 영화의 도약이 눈에 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필리핀 주류 영화감독들이 필리핀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그려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최근 정부에서 영화제작보조금(FDCP)을 지원해줘서 산업적으로 자금조달의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기작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다음 작품은 재미있는 섹스코미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호러, 코미디, 독립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한 감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