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차기 미국 대통령? 할리우드에게 물어 봐
2008-10-07
글 : 최하나
오바마에 대한 공개적 지지 선언한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큐멘터리 <슬래커 업라이징>과 미국 대선 구도

오바마냐 매케인이냐. 차기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진행 중인 치열한 난타전에 할리우드도 출병했다. 현재 최전방에서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은 단연 야구 모자를 쓴 악동, 마이클 무어다. 2004년 대선 시즌에 <화씨 9/11>을 개봉하며 노골적으로 부시 정권에 주먹을 날렸던 무어는 당시 미국 전역 대학가를 순회하며 젊은이들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했던 (그러나 부시의 재집권으로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던) 자신의 여정을 기록한 신작 다큐멘터리 <슬래커 업라이징>(Slacker Uprising)을 9월23일 온라인에 무료 개봉했다. 할리우드에서 이른바 메이저급의 감독이 장편을 통째로 온라인에, 그것도 무료로 배포한 것은 사상 최초의 일로, 무어의 파격적인 선택은 명성에 걸맞은 파괴력을 여실히 입증하는 중이다.

<슬래커 업라이징>은 공개되기가 무섭게 아마존 VOD 리스트 1위를 꿰찼으며, 아이튠즈를 통한 다운로드는 일반적인 블록버스터의 3배에 가까운 속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캐나다 거주자에 한해 누구나 전편을 다운받을 수 있으며, 마이클 무어는 아예 관객으로 하여금 지역 상영회를 조직해 적극적으로 영화를 공유할 것을 권장하고 나섰다(실제로 영화가 공개된 지 사흘여 만에 이미 30여개의 상영회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풍자와 독설, 도발로 꽉 들어찼던 무어의 전작들에 비해 <슬래커 업라이징>는 콘서트 실황 영상에 가까운 비교적 얌전한 작품이지만, 이미 배럭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무어는 결론적으로 다시는 “2004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종용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그가 순회했던 62개 도시 중 54곳이 실제로 부시가 아닌 케리를 선택했다는 점, <슬래커 업라이징>이 대선을 불과 5주 남짓 앞둔 시점에 공개됐다는 점 등 무어의 파격적인 행보는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오바마를 향한 할리우드의 일방적인 편애

비단 마이클 무어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할리우드는 전통적으로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대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진보 성향을 또렷하게 드러내왔다. 무엇보다 할리우드는 “ATM 기계”로 불릴 만큼 정치인들에겐 놓칠 수 없는 막강한 자금줄이다. 대체로 조직화된 캠페인을 펼치기보다 개인적인 입장 표명으로 지지의사를 밝히는 할리우드의 얼굴들이 한자리에 집결하는 것은 바로 후원 모금 행사를 통해서다. 지난 대선 당시 할리우드가 후원금으로 정가에 헌납한 액수는 3천만달러에 육박하고, 그중 70%는 민주당의 몫이었다. 올해 대선의 판세 역시 비슷한 모양새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할 스타들이 앞다투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이미 할리우드에서의 투표는 끝났다”고 단언했으며, <LA타임스>는 “존 매케인이 할리우드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어낼 확률은 스필버그의 차기작에 출연할 확률보다 작다”고 비아냥거렸다. 마이클 무어와 함께 선두에서 오바마 진영을 이끌고 있는 것은 오프라 윈프리다. 그 뒤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수잔 서랜던 등 전통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포진해 있으며 윌 스미스, 조지 클루니, 톰 행크스, 스티븐 스필버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스칼렛 요한슨, 밴 애플렉, 새뮤얼 L. 잭슨, J. J. 에이브럼스, 에드워드 노튼, 모건 프리먼, 윌 페렐, 제시카 알바 등 세대를 막론하고 할리우드의 별들은 일제히 오바마에 애정을 표했다. 오바마와 몇 차례 만남을 가졌으며 오바마 지지 광고에 출연하기도 한 스칼렛 요한슨은 “나의 심장은 배럭의 것”이라는 말로 한때 염문설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조지 클루니는 스위스 제네바까지 날아가 각국의 오바마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모금 행사를 개최했다. 매케인의 러닝메이트인 사라 페일린이 이른바 ‘하키 맘 신드롬’을 이끌며 급부상하자, 맷 데이먼은 “이건 정말이지 아주 나쁜 디즈니 영화를 보는 것 같다”며 독설을 퍼부었고,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에는 페일린을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해 공화당 여성 지지자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9월16일 본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진 할리우드 후원 모금 파티에서 오바마는 300여명의 지지자들로부터 하룻밤 새 1천만달러에 달하는 기록적인 액수의 후원금을 수확했다.

메케인의 반격에도 불구, 표심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할리우드의 영향력

오바마를 향한 할리우드의 일방적인 편애에 존 매케인은 역으로 공격 태세를 취하는 모양새다. 그는 오바마를 패리스 힐튼,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교차편집한 광고를 내보내 오바마에 ‘셀리브리티’ 딱지를 붙이고자 시도했고, “오바마는 민중의 편에 선다고 말하면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그의 셀러브리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할리우드로 날아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매케인의 이러한 행보는 오히려 “위선적”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LA타임스>는 “매케인은 지금 자신이 조롱하는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돈을 얻어내기 위해 할리우드 후원 모금 행사에 고정적으로 들락거리는 인물이었다”고 꼬집었으며, 실제로 매케인은 지난 8월 할리우드의 몇몇 공화당 지지자들과 후원 모금회를 개최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매케인 진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MGM 회장 해리 슬론을 중심으로 아놀드 슈워제네거, 실버스터 스탤론, 로버트 듀발, 존 보이트, 게리 시니즈 정도이지만, 그중 누구도 오바마 진영만큼 적극적으로 후보를 두둔하고 나서지는 않고 있다. 전통적으로 할리우드의 공화당 세력이 민주당에 비해 정치적 발언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매케인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할리우드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은 그가 동성 결혼 금지 법안인 ‘프로포지션8’(proposition 8)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는 “로버트 듀발, 실버스터 스탤론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매케인 편에 선 이유는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 때문이지 사회적인 이슈에 관해 동의했기 때문은 아니다”라며 “할리우드와 같은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사회적인 이슈에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특히 타인의 삶에 대해 불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의 표심은 과연 어느 정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가. 스타들의 지지가 물량 지원의 차원을 넘어 일반 유권자들의 선택을 좌우할 힘을 갖고 있는가는 결코 단언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1차 TV토론 이후에도 오바마와 매케인이 여전히 팽팽한 접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아마도 털끝만한 차이일 것이며, 할리우드의 행보가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대선까지 앞으로 한달여. 미국은, 그리고 지금 할리우드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극적인 드라마를 쓰고 있다.

<슬래커 업라이징>은 어떤 영화인가?

‘슬래커 업라이징’(Slacker Uprising)은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마이클 무어가 미국 62개 도시의 대학가를 돌며 강연을 펼쳤던 순회 투어의 이름이다. ‘슬래커’(Slacker)란 사전적 의미로는 ‘게으름뱅이’란 뜻으로, 마이클 무어는 빈둥대며 투표소에 나가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한표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호소하기 위해 투어를 기획했다. <슬래커 업라이징>은 본래 <Captain Mike Across America>라는 제목으로 토론토국제영화제에 한 차례 공개됐던 다큐멘터리를 재편집한 작품. ‘펄잼’의 에디 베더, 조앤 바에즈,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등의 지지 공연과 연단에 선 마이클 무어의 발언이 연대기식으로 느슨하게 구성됐다. “지난 20년 동안 나를 지지해준 이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무어의 말처럼 <슬래커 업라이징>은 특정한 논쟁점을 건드리기보다는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에 가깝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공산주의자”라며 확신에 가득 찬 발언을 내뱉는 군중이나, 행사장에 나타나 손을 부여잡고 “죄인을 용서하소서”라며 찬송가를 부르는 무리 등 문제적 감독 마이클 무어를 둘러싼 돌출적인 드라마는 여전히 매콤쌉싸름하다. 북미지역 거주자에 한해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하지만, 아마존 등의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DVD가 9.95달러에 판매 중이다.

할리우드는 “안티-페일린”?

사라 페일린이 매케인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며 호들갑스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가장 많은 독설을 퍼부은 것은 아마도 할리우드였을 것이다. 사실상 백지에 가까운 페일린의 경력을 비롯해 동성 결혼 반대, (강간과 근친상간을 포함한) 낙태 반대 등의 정치적 노선은 많은 스타들의 입을 무척이나 간지럽게 했으며, <LA타임스>는 아예 “사라 페일린 vs 할리우드”라는 별도의 섹션을 만들기도 했다. 다음은 페일린을 둘러싼 할리우드의 말말말.

맷 데이먼: “(매케인이 임기를 마치지 못할 경우) 사라 페일린이 실제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건 정말로 두려운 일이다. 그녀가 ‘오, 나는 하키 맘이에요’라고 말하면서 푸틴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린제이 로한: “지금 미국의 2인자가 되려고 하는 여자가 불과 4년 전만 해도 TV 앵커를 꿈꿨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롭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가진 능력의 전부일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2006년에 여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에바 롱고리아: “페일린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투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캔디스 버겐: “나는 그녀의 연설을 들었으며, 그것은 무서웠다.”

지나 거손: “나는 사라 페일린 주지사예요. 나는 저널리즘 학위를 따기 위해 6년 동안 5개 대학에 다녔죠. 배럭 오바마요? 딱 한 군데 다녔답니다.” (페일린으로 직접 분한 패러디 영상물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힐러리의 여성 지지자들을 오바마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계획된 이러한 냉소적인 책략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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