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출신의 솔밴드 <데블스>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들의 ‘휠링’과 ‘쏘울’을 한눈에 알아보는 건 기자이면서 팝 칼럼니스트인 한 중년의 남자다. 그가 <데블스>를 화려하게 데뷔시킨다. 그는 약속과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시대의 청춘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불사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되게 엄숙한 인물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갈색 라이방(선글라스)에, 백색 양복, 장발, 과장되고 희화화된 말투, 절도있지만 낭만적이기도 한 몸짓. 치밀한 연구 끝에 나온 그 설정과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을뿐더러 생동감있다. 배우 이성민은 이병욱이라는 이 역할을 매우 유쾌하고 매력있게 해낸다. 억지로 짜내지 않는다. <씨네21>은 영화 <밀양>에 출연했던(주인공의 마을 친구인 주방장) 그를 비범한 조연으로 점찍어 일찌감치 만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빨리 또 다른 ‘휠링’을 보여줄지 미처 몰랐다. 정말 180도 다른 모습이다.
-영화를 먼저 본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당신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영화 보고 이유를 알았다. 확실히 어필한 것 같다.
=그런가? 기분 좋게 찍었다. 그중에서도 시민회관에서 데블스에게 명함 건네주는 장면이 있다. 그 신이 가장 즐거웠다. 감독도 즐겁게 오케이했고. 뭐 감독님이야 오케이하면서 밝은 표정은 잘 안 짓지만. (웃음) 긴 숏은 아직 내게 힘들다. 카메라, 조명 다 맞춰서 가야 하니까. 현장에서 동선을 정하고 대사도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때 아직 순발력이 좀 떨어진다. 가장 힘들었던 건 미미(신민아)가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다. 그 장면은 한 스무번 갔다. 예전에는 내가 어떤 신을 책임지는 걸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런 신들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부담스러웠나 보다. 영화 연기 오래 한 사람들 정말 존경한다. 문성근 선배에게 ‘영화는 카메라 울렁증하고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신을 책임져야 하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랬더니 대답은 그냥 즐겨라였다. 아니 근데 그게 쉽나. (웃음)
-초반 시나리오보다는 분량이 늘어났을 것 같다
=맞다. 초반 시나리오에서는 내레이션이 많았다. 촬영하면서 늘어난 건 별로 없는데, 촬영 들어가기 전 마지막 대본이 지금 촬영분과 동일하다. <고고70>이 스토리보다는 음악이 강조되는 면이 있고 점프하는 면이 많기 때문에 데블스 이야기를 진행해주는 사람으로 이병욱이 필요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고. 안타까운 점 하나는… 그러니까 이병욱의 실존 모델인 서병후 선생께서 안타까워하는 건 그런 거다. 왜 나를 희화화했느냐 하는 거. 이게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 사실은 그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당시 로큰롤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고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하지만 나로서 변형은 어쩔 수 없었고, 다른 건 몰라도 그분의 기여도 부분이 신뢰가 갈 수 있도록 연기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병욱이라는 인물에 관해 감독과 미리 합을 다 맞춘 것은 아니라고 하던데.
=어… 감독님이 나를 그냥 믿어주셨다. 잘하실 거예요, 하더라. 음악이 워낙 중요한 영화라 감독님은 그쪽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많이 바빴다. 대신 인물이나 당시 시대상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주셨다. 그걸 참고로 해서 내가 살을 붙여 만들어본 거다. 첫 리딩할 때 캐릭터가 처음 공개됐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 역을 제안받았을 때는 조건이 딱 하나 있었다. 뭐냐 그랬더니, 살을 빼라고 하더라 , 그래서 무조건 빼겠다고 했다. (웃음)
-인물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요소들을 어디서 얻었나. 눈길을 사로잡는 매우 구체적인 말투와 액팅이 있다
=일단 이 인물이 굉장히 지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도 서병후 선생은 영어를 잘하셨다더라. 반면 폴크스바겐 타고 다니면서 보디가드도 데리고 다녔다더라.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만들어본 거다. 영어는 내가 일부러 좀 과장되게 굴려본 거다. DJ 이종환 아저씨 영어 말투 좀 흉내낸 거고. 동작은 인물의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과장해본 거고. 아, 그리고 이병욱 머리가 나중에 경찰에 잡혀갔다와서 잘리지 않나. 원래는 그냥 계속 길었다. 근데 잡혀갔다온 거 아닌가. 대본상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잘리는데 나는 잘린다는 설정이 없더라. 순서가 왔는데 계속 고민이 되는 거다. 과연 거기 잡혀갔다온 놈이 머리가 멀쩡할까 싶더라. 그래서 조감독 불러서 나도 머리 잘라야 하는 거 아니냐 했다. 그 말을 감독님이 전해 듣고는 아 맞아, 잘라야 돼, 잘라야 돼, 급하게 그러시더라. 그래서 미용실 갈 시간은 없고 그냥 현장에서 머리를 잘랐다.
-그럼 그 독특한 말투와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독특하다고 지금 드라마 같이 하는 (김)상경이도 그러더라(이성민은 <대왕세종>에서 최만리로 출연 중이다). 경상도라 그럴지도. 이병욱 역할은 사실 우리 아버지도 약간 흉내낸 거다. 아버지가 꽤 멋쟁이셨다. 젊은 시절에는 날라리처럼, 딴따라처럼 사셨는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 특징이 전화받거나 낯선 사람하고 얘기만 하면 평소하고 목소리가 확 달라진다. 라이방도 아버지에게서 힌트를 얻은 거고. 기억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 하나씩을 그렇게 뽑아 이 역할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 인터뷰 한 거 보면 말투가 지금하고 확실히 다르다. 70년대 영화도 몇편 봤는데, 그 뭐더라 여자가 시골에서 올라와 술집에 가고 나중에 손이 잘리는….
-<영자의 전성시대>.
=맞다, 그거. 그거 보니까 다들 힘이 들어간 말투를 쓰더라. 묘한 뉘앙스 차이가 중요한 것 같다. 말끝에 에이 썅, 짜~식을 넣느냐 마느냐. 이런 거 하나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 아마 관객이 나를 보고 당시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보아오던 그런 매체에서 나온 이미지와 역할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었다. 세종대에서 콘서트 장면을 촬영하던 중이었는데 어떤 노인 한분이 촬영 중인 나를 보더니 막 웃으시는 거다. 거기 극장 관장님이셨는데 당신이 젊었을 때 명동에서 DJ 했다더라. 그런데 정말 그날 내 차림새하고 똑같이 하고 다녔다면서. 그러니까 실제로도 크게 달랐던 것 아니겠지.
-옛날 자료 읽다가 재미있었던 건 없었나.
=우리나라 팝의 역사를 알고 놀랐다. 우리 아버지 세대, 이 양반들도 우리 젊었을 때하고 별반 다르지 않구나. 오히려 지금보다 더 대단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광화문까지 줄을 섰고, 닐바나 클럽은 실제로 입장료가 엄청나게 비쌌다더라. 근데 들어갈 자리가 없었단다. 명동에 있는 한 음악살롱은 층별로 장르별 음악이 나뉘어 있었고, 그게 또 불야성을 이뤘고. 그 당시 여자가수들 노래 들어봐도 장난이 아니다. 솔에 있어서는 그때가 정말….
-60년대 후반생이니까 사실 그 시대는 유년의 잔상으로 남아 있겠다
=나는 그 시대가 끝난 뒤 찾아온 디스코 시대다. 영화에서처럼 구체적으로 억압받았던 세대도 아니고. 하지만 이런 기억은 있다. 아버지 때문에 여러 곳을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 전주에서 다니다가 봉화로 옮겼다. 수요일 아침마다 새마을 조회라는 게 있었다. 등교도 그날은 동네별로 깃발 들고 해야 했다. 4학년이었는데 머리 길다고 잘린 거다. 울면서 학교 갔다니까.
-데블스 멤버는 만나봤나.
=술자리에서 한분 뵌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곡 쓰는 것보다는 연주에 치중했다고 하더라. 신중현씨를 제외하고 거의 그랬는데 지금은 후회하신다고 하더라. 배철수 아저씨, 김수철 아저씨 다 그때 시민회관에서 관중으로 놀았다더라. 가장 재미있었던 얘기는 이거다. 당시에 밴드들, 그러니까 ‘로끄 그룹’들이 통기타 가수들을 그렇게 싫어했다더라. 왜냐하면 로끄 그룹들은 방송에 나가려면 정말 리어카(손수레)에 장비들을 죄다 싣고 가야 했다. 그런데 통기타 가수들은 달랑 기타 하나 들고 오지 않나. 그게 이유없이 그렇게 미웠다는 거다. 밴드 멤버들이 단속 걸리고 긴급조치 때문에 와해되고 난 다음 통기타 세대가 왔다. 그리고 밴드의 보컬들은 솔로로 독립했고. 사실 이 영화는 딱 그 시기 직전인 거다. 안타까운 건 그냥 그렇게 걔들 놀게 놔뒀으면 지금 대중문화는 또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더라. 사실 이 영화에 메시지가 있다면 이거다. 우리 아버지들도 솔이 있었는데, 너희들도 솔 좀 가져라. 이거 말이다. 하지만 역시 중년들도 보면 좋겠다. 강신일 선배한테 데블스 알아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모르시더니, 그럼 노래 <그리운 건 너> 아냐고 했더니 대번에 기억해내더라. 그렇게 알게 모르게 지금 중년들에게 남아 있을 거다.
-하지만 요새 대한민국 시계 거꾸로 돌고 있지 않나. <고고70>은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한데, 판타지는 영화가 다루는 시대와 그걸 보는 시대 사이에 약간 거리감이 있을 때 보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며 즐기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 보다가 한편으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음… 맞아, 여기 한겨레였지…. 얘기 하나 할까. 이병욱이 따귀 맞을 때 치는 대사가 있는데 그거 원래 대본에 없던 거다. 밀어붙이면 다 되는 줄 알아? 뭐 이런 건데 사실은 다른 센 것도 하려다가 그냥 그 정도만 했다. 그 당시가 한창 촛불집회할 때였다.
-청년기에는 한 음악 들었나.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팝을 많이 들었다. 딥 퍼플, 스콜피언스. 우리 고등학생 때만 해도 ‘마이마이’ 초창기 세대고, 전축 세대, 라디오 세대, 빽판 세대였다. 친구방에 전축 있어서 걔네 집에 가서 딥 퍼플, 스콜피언스, 레인보우 많이 들었다. 그때 김기덕 아저씨(DJ 김기덕)가 전국 다니면서 뮤직비디오 보여주곤 했는데 찾아가고 그랬다. 그 당시에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같은 걸 그때 봤다.
-노래나 악기 연주는? 영화에서는 음악칼럼니스트로 나오지만 밴드의 일원이 돼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노래를 전혀 못하고 악기쪽에 아예 소질이 없다. 초등학생 때 피리를 다 불어야 집에 보내주는데 그때도 항상 늦게 갔다. 음악영화니까 다른 배우들은 앉기만 하면 다 이거다(기타 치는 흉내). 경우씨(드러머)는 앉기만 하면 이거고(드럼 치는 흉내). 오죽하면 신민아는 하도 심심하니까 나중에 아예 기타를 하나 사버리더라. 그리고 현장에서 연습하더니 나중에는 잘 치더라니까. 나는 콘서트라고 해봐야 이은미 콘서트 한번밖에 안 가봤다. 그런데 조승우 노래하는 걸 보니 노래 한번 잘해봤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고고70>으로 좋은 연기를 남겼다. 2차 도약이 필요한 시기다. 그저 그런 코미디 연기를 하다 잊혀질 수도 있고 더 도약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기다
=도약이란 말은 좀 웃기고… 왜냐하면 도약은 뭐 좀 열심히 뛰고 달려온 다음에 하는 게 도약이지, 나는 뭐 운 좋게 <고고70>을 하게 됐다. 옛날에 두세신 가벼운 마음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현장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늘 무거운 마음으로 현장에 갔다. 말한 대로 신을 책임져야 하는 연기가 많아서였다. 나는 뭐 독특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잘생기지도 않았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 별로 없다. 심지어 살면서 별명 하나 없었다. 그렇게 특징이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배우를 하고 있는 거니까 저 사람이면 이게 딱이야 하는 역할이 그동안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에 연기란 눈에 힘을 주고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려고 한다. 좋은 역할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인 건 또 그때 생각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