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리덕스> Ashes of Time Redux
왕가위 | 홍콩 | 2008년 | 93분 | 컬러 | 갈라프레젠테이션 | 20:00 롯데4
광활한 황무지의 주막에 은거하는 구양봉(장국영)은 암살을 사주하는 중개인이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장만옥)과의 사랑에 실패한 그는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동사서독>은 그의 주막을 차례로 찾아드는 사랑에 괴로운 모룡연(임청하), 눈이 멀어가는 자객 맹무살수(양조위), 살인 청부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한 처녀(양채니), 협객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은 가난한 무사 홍칠(장학우)의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 보인다.
왕가위가 설립한 택동영화사의 창립작이었던 <동사서독>(1994)은 김용의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고 당대의 스타들을 모두 불러들였으나, 제작비 수급과 촬영기간의 난항 등 우여곡절 끝에 흥행에서는 참담한 결과를 맛봤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동사서독 리덕스>는 창고에 처박혀 있던 15년 전의 작품을 새로 복원하고 재편집한 버전이다. 하지만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처럼 삭제장면이 몇 십분씩 추가되거나 하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일은 없다. 도입부에 새로운 장면들이 살짝(정말 살짝) 추가됐는데, 물결치는 사막 모래 장면이나, 고속촬영으로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변화하는 태양의 이미지를 CG로 보여주는 장면이 추가됐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백로, 입춘 등 계절에 어울리는 절기의 소제목이 첨가되면서 순환의 의미를 덧붙였다. 그렇게 이야기는 구양봉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 자신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기까지 경칩으로 시작해 경칩으로 끝난다. ‘시간의 재’라고 하는 영어 제목에 충실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마지막은 춤을 추는 듯한 구양봉의 화려한 액션으로 마무리된다. 다소 어정쩡한 느낌으로 마무리됐던 원본의 의미를 명확하게 했다. <동사서독 리덕스>는 결국 <동사서독>이 버림받은 무사 장국영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동사서독>이 결국 ‘<아비정전> 못 다한 이야기 속편이 아니냐?’는 오랜 질문에 왕가위는 <동사서독 리덕스>로 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