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키아누 리브스]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없으면 출연하지 않는다"
2008-10-14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지구가 멈추는 날>의 키아누 리브스

연말을 겨냥해 올 12월 미 전역 개봉예정인 스콧 데릭슨 감독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공상과학계 컬트 클래식으로 꼽히는 195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아직 완성되지 못해 기자 시사회를 갖지 않은 이 작품은 원작과는 다른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설정, 그리고 가장 아이코닉한 외계 로봇인 ‘고트’의 새 디자인 등에 대한 소식이 유출돼 골수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인공 클라투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가 자신의 캐릭터는 물론 리메이크에 대한 여론,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 등을 이야기했다.

-영화는 못 봤지만 ,트레일러를 보니 원작의 클라투보다 악해 보인다
=우리 버전은 좀 사악하다. 원작에서 클라투는 인간 형상을 한 외계인(humanoid)으로 인간적이고, 개방적인데, 이번 작품은 음…. 클라투의 성격 나쁜 동생뻘이라고나 할까. (웃음) 원작의 연장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원작에서의 관대하고 아량있게 인류를 대했던 방식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주는 캐릭터다. 또 내가 연기한 클라투는 육체적인 형상이 없는 에너지와 같은 존재로, 인간의 신체를 잠시 이용한다. 이번 작품에서 인류에 대한 회의감으로 차 있던 내 캐릭터는 제니퍼 코넬리(헬렌 역)와 제이든 스미스(헬렌의 양아들 제이콥 역) 등의 캐릭터를 통해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지난 몇년간 할리우드에서는 리메이크와 속편들이 크게 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이 맞다. 내 경우에도 번안작도 했고, 리메이크 영화에도 출연했다. 특히 이번 작품의 원작은 클래식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펄프 장르를 대중적으로 만들었고, ‘냉전’ 등 50년대 초 당시의 사회적 이슈를 풍자한 작품이기 때문에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난 이유가 필요했다. 왜 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냐고 감독에게 물어봤는데, 만족스러운 답변을 해줘서 출연하게 됐다. 우리 작품은 원작의 이슈를 현대화하는 데 노력했기 때문에 요즘 팽배해진 미디어의 폭력이나, 환경오염 등 새로운 소재를 다뤘다. 현재 인류가 직면하는 상황과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열심히 만들었으니, 관객도 좋아해줬으면 한다.

-트레일러에서 보니 원작에는 없는 거짓말 탐지기 장면이 있던데.
=극중 클라투가 탈출하는 부분이 있는데, 매끄럽게 이어줄 만한 설정이 필요해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클라투가 인간의 몸에 갇혀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으면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 장면이 포함됐다. 즉흥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는 아니고, 스콧 데릭슨(감독), 데이비드 스카파(작가) 등과 5주 정도 스크립에 대해 토론하고, 교정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 반영됐다. 이 시기에 원작의 특성에 대해서도 토론했는데, 워낙 좋은 소스지 않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충실히 따랐다.

-원작에서 클라투는 종교에서 정치까지 여러 분야의 심벌로 그려졌다.
=클라투가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겠지만, 일부의 의견처럼 공산주의도 아니고 탈레반도 아니라고 본다. 이 캐릭터가 악마화되고,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적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클라투는 간단하다. 인류에게 “정신차리고 제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대신 정신차리게 해주겠다”고 경각심을 심어준다. 지금 모두가 정신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고, 이런 상황을 반영한 작품이 <지구가 멈추는 날>이다.

-클라투의 캐릭터를 세트장 밖에서 떨치기 힘들었나.
=영화 <스트리트 킹>은 힘들었는데, 클라투는 쉬웠다. 다만 얼굴 표정 없이 연기하는 경우가 많고, 동작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무표정하고 차갑게 대답한 적이 있는데 상대방이 무척 당황해하더라. 미안했다. (웃음)

-클라투처럼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세상이 있다면.
=완벽한 세상? 유토피아? 그런 말 자체가 별로 와닿지 않는다. 불교의 사상처럼 인류에 대한 동정심과 애정, 그리고 함께 괴로움을 나눌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모두가 행동한다면 그게 완벽한 세상이 아니겠나.

-얼마 전 인터뷰에서 데니스 퀘이드가 나이 들수록 인생이 즐겁다는데, 진짜 그런가.
=데니스 퀘이드는 멋진 사람이다. (웃음) 40대에는 육체적인 능력이 따라주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도 많아져 조화가 이뤄지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에서 연기생활이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나.
=어릴 적부터 용기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연기란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밀고 나갔다. 물론 운도 따라줬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40~50대에도 커리어를 바꾸고 그러더라. 하지만 난 그러진 못할 것 같다. (웃음) 계속 연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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