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칼럼]
[오픈칼럼] 우익배우 논란
2008-10-24
글 : 정재혁

내가 자주 가는 게시판 사이트에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글이 하나 있다. 누구누구 우익배우, 우익배우 누구누구 또 막말 등 일본의 특정 배우를 우익이라 지목하며 비판하는 글이다. 얼마 전에는 ‘아고라 사운드’라는 데서 만든 우익배우 총모음 파일도 보였다. 여기서 거론되는 배우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매우 인기가 많은 스타급이다. 처음엔 아오이 유우, 마쓰야마 겐이치, 쓰마부키 사토시 등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몇몇 배우들의 이름이 올라오는 수준이었지만 얼마 전부턴 해당 작품의 연도와 역할명을 명시하며 ‘우익배우’ 리스트를 총정리하고 있다. 이 게시글은 마치 모종의 블랙리스트처럼 네티즌의 욕을 먹으며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이와 같은 성격의 게시글을 보고 처음엔 그냥 무시하고 넘겼다. 어디에나 바보 같은 소리 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고, 이 글에 동조하는 사람도 아주 극소수에 해당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모 패션지에 실린 아오이 유우의 인터뷰로 다시 ‘우익배우’논란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을 땐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관련글이 업데이트되는 주기가 짧아졌고, 게시글에 덧달린 댓글들은 모두 한소리로 아오이 유우를 욕하고 있었다.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마저 “우익배우는 이제 꺼지”라며 그간의 애정을 한순간에 어디 쓰레기통에라도 갖다버린 듯이 말했다. 해당 잡지는 아오이 유우에게 “당신이 출연한 두 전쟁영화 <남자들의 야마토>와 <내일에의 유언>이 한국에선 우익 논란에 휩싸여 있다. 두 영화 출연을 결정한 계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아오이 유우는 “(매우 긴 고민 끝에) 전쟁영화라서 출연한 건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배우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국의 네티즌은 아오이 유우의 역사관을 질타하며 “한국 좀 오지 말라”고 적었다. 이유야 모르지만 실제로 올해 부산에 오기로 예정돼 있었던 아오이는 한국 방문을 취소했다. 하지만 나는 아오이의 저 답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익배우’ 게시글은 시간이 지나면서 체계화되고 있다. ‘우익영화’, ‘우익드라마’의 의미를 ‘일본이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고 일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며 미화시키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고, 각각의 작품이 왜 우익 영화, 우익 드라마인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출연한 배우들을 몰매 때리듯 낙인찍고 있다. 마치 자신들의 비판이 일본에 대한 단순무식한 적대 감정이 아니라는 걸 포장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비난에 대한 탄탄한 기준을 만들고 적과 나를 나눠 화를 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누가 우익배우이고 아닌지를 나누는 일이 왜, 어디에 필요한 일인지도 의문스러운데, 분노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성을 담보받으려는 이 네티즌의 이상한 몸부림은 정말 불편하게 느껴진다.

일단 우익 작품에 출연하면 우익배우인가. 우익배우란 말이 정말 우습다. ‘아고라 사운드’ 기준에 의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현실을 미화한’ 영화 <클럽 진주군>에 출연한 오다기리 조는 우익배우이지만 그는 재일 조선인의 비애를 그린 영화 <박치기!>에도 출연했다. 문제의 아오이 유우도 재일동포 감독 구수연의 <우연히도 최악의 소년>을 찍은 적이 있다. <남자들의 야마토>는 분명 우익 성향의 정치영화일 수 있지만 죽어가는 가족, 마을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노자키 다에코를 연기한 아오이 유우를 우익배우라 말할 순 없다. 도대체 정치적인 발언 한마디도 없이 정치 성향의 수식어로 비난받는 배우가 한국의 인터넷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이는 마치 배우의 연기를 정치가의 선동으로 감상하는 꼴이다.

우익이란 개념에 대한 접근도 애매하다. 우익배우를 욕하는 네티즌은 다른 역사, 가치들은 모두 배제하고 단순히 전쟁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만, 그것도 한 작품 안에서만 생각한다. 우익이 일본사회 내에서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 무엇이 나쁜지에 대한 질문은 필요없고, 침략국 일본 역사에 아무 말 없이 출연해 연기한 배우들이 밉상인 거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 순도 100% 우익영화는 2007년 국내에서 개봉해 관객 300만 이상을 동원한 <식객>이다.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시공간을 초월한 악당으로 묘사하며, 모든 플롯과 이야기 구성을 잠재되어 있는 한국인의 대일정서에 기대는 이 영화는 일본 우익 성향의 영화 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100% 동일하다. 묘사 방식에선 더 심하다. 그렇다면 김강우, 이하나도 우익배우인가? 한국말로 옮기면 보수배우쯤 되는 건가? <클럽 진주군>이, <남자들의 야마토>가 우익영화라 싫었다면 <식객>도 싫어야 정치적으로 논리가 들어맞는 거다. 그들의 반우익이 단순한 반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건강한 정치적 자각이 아닌 궁핍한 반일 콤플렉스는 버리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