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LA] 과거를 향수하는 고독한 로맨티스트들
2008-10-22
글 : 황수진 (LA 통신원)
에드 해리스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정통 서부극 <아팔루사>
<아팔루사>

<아팔루사>(Appaloosa)는 서부극의 전통을 ‘조용히’ 따르고 있다. 총소리, 말굽소리 가득한 몇몇 대결장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는 조용하다. 1882년 뉴멕시코. 법이 미처 자리잡기 이전의 서부. 보안관을 쏴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부패한 목장주 브랙(제레미 아이언스)이 있고, 그에게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총잡이 버질 콜(에드 해리스)과 그의 오른팔 에버렛 히치(비고 모르텐슨)가 있고, 동부에서 홀로 마을을 찾아온 아리따운 미망인 앨리 프렌치(르네 젤위거)가 있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세계지만 두 총잡이는 무척이나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세계의 규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락>에 이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에드 해리스는 이번에는 로버트 파커의 원작 소설을 로버트 나트와 함께 시나리오로 옮기는 작업까지 맡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배우 출신 감독의 장기답게 에드 해리스는 누구보다 빠른 총잡이팀이면서도 괴짜인 버질과 에버렛 두 캐릭터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여러 역할을 맡느라 바빴을 에드 해리스가 다소 주춤하는 반면, 비고 모르텐슨은 삐딱한 표정으로, 그러나 버질에게는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에버렛으로 영화를 끌어나가고 있다. 서부. 무법의 세계. 비어 있는 그 자리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읽는 두 남자의 단단하지만 끈적거리지 않은 신뢰가 채우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사실 단순하고 이들의 관계는 복잡하지 않다. <아팔루사>의 캐릭터들은 모두가 당당하다. 악당 브랙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로 가득하고, 앨리는 뻔뻔하지만 구질구질하지 않다.

한동안 잊혀졌던 서부극은 관객의 수요보다는 서부극을 보고 자라난 세대가 장르의 귀환을 꿈꾸며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팔루사>도 그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 서부극은 꽤나 화려하게 관객을 찾았던 <3:10 투 유마>를 제외하고는 아트영화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아팔루사>는 젊은 관객보다 과거를 향수하는 고독한 로맨티스트들에게 어울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촬영감독인 딘 셀머의 카메라가 잡아낸 화면은 전통 서부극의 정갈한 스틸 사진들처럼 순간순간 빛을 발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호흡이 많이 처진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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