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봅시다] 야한 재미 원하면 만화책 8권부터
2008-10-30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영화 <피아노의 숲>의 원작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피아노 연주곡들

“숲속에 버려진 피아노는 소리가 안 난대. 그런데 밤이 되면 귀신이 나타나~ 쾅쾅쾅!!” 으스스한 학교괴담으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괴담조차 사랑스럽다. <피아노의 숲>은 아름다운 영상과 선율로 무장한, 성장과 우정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 국내에도 출간된 원작 만화 덕분에 입소문이 난 이 영화를 보면 궁금해질 원작과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다.

1. 원작 vs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은 <좋은 친구들> <하나다소년사>를 그린 이시키 마고토의 동명 만화에 바탕을 둔다.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1~5권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두 주인공 카이와 슈헤이의 첫 만남부터 첫 콩쿠르에서 겨루기까지를 담았다. <마스터 키튼> <몬스터> <하나다소년사> 등의 만화 원작을 TV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고지마 마사유키가 메가폰을 잡았다. 고지마 감독은 이전까지 쌓아온 “원작에 충실한 재현”이라는 평판의 연장선 위에서 <피아노의 숲>을 완성했고, 성폭행에 대한 암시, 성기를 이용한 유머를 고스란히 들어내 어린 관객에게 적합한 수위로 각색했다. 애니메이션은 101분이라는 시간 안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유년을 보는 듯한 소년 둘의 우정과 경쟁을 압축적으로 담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만화책은 1970년대 일본에 대한 향수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 천재를 시기하면서도 사랑하는 수재의 고뇌를 그려낸다. 콩쿠르에서 만난 ‘변소공주’ 다카코, 학교의 폭군 다이가쿠 등 주변 인물에 대한 부연설명도 애니메이션이 과감하게 생략한 반면 원작은 시간과 공을 들여 묘사했다. <피아노의 숲>의 진수를 맛보려면 애니메이션보다는 원작을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 하지만 극장판의 매력은 상상에 가둬야 했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한다는 점이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수록곡을 연주했다.

2.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 그 이후

애니메이션의 뒤를 잇는 이야기는 만화책의 6권부터다. 전국학생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슈헤이는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카이는 숲의 피아노가 벼락을 맞아 불탄 뒤 스승인 아지노의 도움을 받아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유학 중 슬럼프에 빠진 슈헤이가 5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와 카이를 만나는 이야기는 8권의 첫 에피소드. 창부의 아들로 태어나 ‘숲의 가장자리’라고 불리는 빈민촌에서 빠져나온 카이는 아르바이트를 금지하는 학교의 규칙을 피해 여장을 하고 스트립쇼에 맞춰 피아노를 친다. 피에로 분장을 한 채 유랑악단 합주로 밥벌이도 한다. 슈헤이가 여장을 한 카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당황하는 장면이나,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장을 한 카이를 좋아하게 되는 타투이스트 사에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을 다룬 1~7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인물로서의 재미를 준다.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직선적인 화법을 가진 원작은 전체적으로 심심했던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현실감과 깊이를 뿜어낸다.

어린 시절 카이와 슈헤이의 우정에 뿌리를 두었던 선의의 경쟁도 천재와 그를 뛰어넘으려는 노력파의 대결구도로 바뀌며 긴장을 더한다. <미스터 초밥왕> <신의 물방울>에서처럼 소재에 대한 감상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탓에 전개가 지루하기도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상대를 갈망하는 슈헤이나 피아노 그 자체를 열망하고 사랑하는 카이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듯. 15권은 쇼팽 콩쿠르에 도전한 천재들의 연주를 재료로 삼았다.

3. 음악

포털 게시판에는 <피아노의 숲>에서 언급된 연주곡들에 대한 문의가 빗발친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인기가 클래식 O.S.T의 판매량으로 이어진 것과 같은 인기의 방증이다. 애니메이션과 원작의 두드러진 차이점을 보이는 곳도 이 부분이다. 카이와 슈헤이가 첫 출전한 콩쿠르의 예선곡이, 만화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2번 F장조 쾨헬 280번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 C장조 쾨헬 310번으로 변경되었다. 또 원작에서는 카이·슈헤이·다카코가 모두 같은 곡을 각자의 개성으로 연주한다.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슈헤이와 카이가 각각 310번의 1악장과 3악장을, 다카코는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 F장조 BWV 971번 3악장을 연주한다. 같은 곡을 3번 들려주는 것이 지루할까 우려한 모양이다. 악보를 그대로 재현하는 슈헤이의 완벽한 연주와 청중을 빠져들게 만드는 카이의 거칠고 자유로운 연주를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다. 이 밖에도 <피아노의 숲>에는 쇼팽의 <강아지 왈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운명 교항곡> 같은 잘 알려진 명곡들이 등장한다. 그중 한번 들은 곡은 그대로 연주해내는 카이가 만나는 첫 번째 난관은, 빠른 곡전개 때문에 지루한 손가락 연습이 필요했던 쇼팽의 <강아지 왈츠>. 본래 곡명은 ‘미뉴에트 왈츠’다. 강아지 왈츠는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의 개가 꼬리를 따라 빙글빙글 도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하여 붙은 속칭이다. 연주시간이 1분 남짓이라 ‘1분간의 왈츠’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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