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서동일] 찍어놓고 또 대판 싸웠다
2008-11-05
글 : 이주현
사진 : 이혜정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에피소드2>의 서동일 감독

장애인의 성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핑크 팰리스>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서동일 감독. 이후로도 사고 한번 치나 했는데 잠잠했다.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제대로 낀 남자의 처지에서 영화란 언감생심이랄까? 그러던 중 육아와 가사노동, 영화라는 세 꼭짓점을 단번에 이을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카메라를 들어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특별히 캐릭터 창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가족 구성원들은 훌륭한 주연이었다. 2004년 영화 <핑크 팰리스>를 찍으면서 만난 부인 장차현실씨. 7년 연상에 여성계의 유명 만화가였고, 다운증후군 딸 은혜의 어머니였다. 부부는 곧 동거를 시작했고, 아들 은백이가 태어났다. 서동일, 장차현실, 서은혜, 서은백, 네 식구 이야기를 어떤 조미료도 첨가하지 않고 담아낸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에피소드2>. 누군가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만큼 솔직하고 직접적이다. 서동일 감독을 제2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에서 만났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들의 생활은 그리 변하지 않은 듯했다.

-어떻게 제작된 영화인가.
=우리 부부가 싸움이 잦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싸우는데 싸울 때마다 이혼한다. 일주일 전에도 이혼했다. (웃음) 어차피 싸우는 거 기록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다양한 갈등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까.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펀드에 지원했고, 유니코리아펀드 지원작에 선정돼서 찍게 됐다.

-사적인 부분들을 공개하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당연히 부담이 됐다. 완성해놓고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또 대판 싸웠다. “난 공개 못해.”“그럼 어떡해. 돈 천만원 받은 거 다 토해내?”“ 좋아, 토해내고 그만둬. 끝내.”(웃음) 하지만 기왕 지원받고 찍는 거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았다. 공개할 바에야 솔직하게 해야지 않겠나.

-은백이가 태어나고 모든 게 달라졌다.
=2세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임신했다고 하니까 당황스러웠다. 막상 아이를 낳았는데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막막했고. 아내는 매일 마감 때문에 애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할 수 없이 내가 애를 보게 됐다. 처음엔 아내한테 구박받기 싫어서 애를 봤는데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아이가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뿌듯했다. 은백이는 나랑 있을 때 엄마 없다고 울고불고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부인이 “남편과 은백이는 포기해도 은혜는 포기하지 못하겠다”라는 말을 한다. 이런 얘기 들으면 섭섭하지 않나.
=아니다. 그냥 좀 안타깝다. 아내의 부담이고 아픔이니까. 평생 은혜를 안고 가야 하는 엄마의 짐이 그만큼 크다.

-은혜를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하는 것 같았다. 친딸이 아니기에 더 신경써줄 수도 있을 텐데.
=맞다. 은백이가 태어나고 더 그런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애정이 은백이한테 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 은혜에 대한 메마른 부정을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주제로 에피소드3을 찍어볼까 한다. 은혜가 올해 19살인데 내년부터 하자센터 놀이단에 정식으로 입단한다. 은혜가 사회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곳에서 은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싶다.

-영화를 보면 술을 굉장히 자주 마신다. 4살 은백이가 소주 따르고 원샷 포즈 취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시골이니까 어두워지면 놀 데가 없다. 술친구도 없고. 밤만 되면 기분이 그렇다. 즐거운 일이 생기면 즐겁다고 한잔, 싸우면 싸웠다고 한잔, 적막하니까 또 한잔. 은백이 앞에 앉혀놓고 같이 술친구처럼 얘기를 나눈다. 은백이의 재롱으로 위안받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아빠 건배~ 캬~’ 이러면서.

-꾸준히 장애, 여성, 성문제를 다루고 있다.
=상황이 그렇게 됐다. 데뷔작 <핑크 팰리스>도 의도한 게 아니었다. 사실 에로영화를 찍어보려고 시나리오를 쓰다가 우연히 성경험이 없는 40대 장애인 아저씨 에피소드를 듣고 충격을 받아서 작업하게 된 거다. 여성이니 장애니 하는 것도 지금과 같은 가족이 구성되다 보니 그런 거고.

-다뤄보고 싶은 다른 주제가 있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것. 현대인들의 삶이나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들. 특정 계층이나 주제가 아니라 좀더 보편적인 내용으로 작업해보고 싶다.

-준비 중인 작품이나 계획이 있다면.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핑크 팰리스>에 출연했던 인물 중에 젊은 뇌성마비 청년이 있는데, 나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여자 관계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보니 일년에 세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뜨겁고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들을 만들었더라. 그 친구의 러브스토리를 멜로드라마로 구상 중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