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김석우] 에베레스트 넘어 남극으로
2008-11-0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이혜정
산악다큐멘터리 <길>의 김석우 감독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추워 보였다. 12월로 예정된 남극 촬영 때문이라고 했다. “제 머리가 어깨까지 왔거든요. 남극에 가면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바리캉으로 밀어버렸죠.” 김석우 감독은 박영석 원정대의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길>의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응했다. 에베레스트 그리고 남극. 김석우의 여정은 그를 산악다큐멘터리 전문감독으로 오해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8) 등 김성수 감독의 대표작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상업영화 출신 감독이다. 10년 동안 김석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길>로 충무로에 입봉하는 소감과 함께 산과의 인연을 물었다.

-남극에는 무슨 일로 가나.
=모든 산악인의 꿈은 7대륙 최고봉과 14좌(해발고도 8000m 이상의 산)를 정복하는 거다. 이중 6개 대륙 최고봉에 오른 김홍빈이란 분이 있다. 산에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장애인인데, 남들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남극 대륙만 빼고 모두 정복했다. 그래서 남극 등반 과정을 촬영하는 김에 그분의 삶도 함께 조명하려 한다.

-또 산악다큐멘터리인가.
=그렇다. 하지만 나를 산악다큐멘터리 전문감독으로 생각하지는 말아달라. 나는 일반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이지만, 시대와 명분과 상황이 자꾸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들도록 떠민다. <길>은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맞아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다음 영화 역시 신체적 결함을 딛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라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찍을 수 있는 사람도, 찍고자 나서는 사람도 없더라. 그래서 등반 기록촬영 경험을 지닌 내가 나섰다. 하지만 남극 등반까지만 찍고 일반 영화에 전념할 생각이다. (웃음)

-1998년 <태양은 없다>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뒤 <길>(2007) 이전까지 필모그래피가 없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태양은 없다>를 마치고 김성수 감독님이 감독 데뷔하라고 하셨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3년 동안 사업을 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영화판으로 돌아와서 산에 관한 시나리오를 두편 썼는데 둘 다 엎어졌다. 그때 전반적인 산악문화가 발전해야지 산악영화도 잘되겠구나 싶어 2005년부터 2년간 ‘문경산악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 다음 <길>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산을 좋아하나보다.
=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산에 다녔다. 대학 다닐 때도 산악 동아리에 있었고, 2000년에는 (히말라야의) 탈레이가사르 원정에도 참가했다. 왜 산을 좋아할까 생각해봤는데, 산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해서 그런 것 같다. 산에 가면 휴대폰도 없고, 고요하고, 옆에 있는 사람도 좋고…. (웃음)

-그럼 산악영화를 전문적으로 찍을 생각은 안 해봤나.
=산에 그냥 가는 것과 일로 가는 건 다르다. 등반 가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촬영 일로 가면 느낄 새가 없다. <길> 때문에 에베레스트 갔을 때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화면을 담을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산을 즐길 틈이 없었다.

-<길> 촬영과정이 무척 힘들었다고 들었다.
=힘들었지. 거의 나 혼자 찍은 거나 마찬가지다. 촬영기사 두명을 데려가긴 했는데, 산악인이 아니라서 처음부터 별 기대는 안 했다. 예상대로 한명은 하체 무기력증으로 중간에 하산하고, 한명은 베이스캠프에 뻗어 있었다. (웃음) 그리고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원정이 바쁘니 기록촬영기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박영석 원정대에는 나와 마음도 잘 통하고 내가 올라가기 힘든 곳의 촬영을 도맡아 해주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사고로 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분이 누군가.
=오희준 대원이다. 산악계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같은 존재였다. 남자로서도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 일을 겪고 한국에 돌아와 20년간 모은 산악 장비를 다 팔아버렸다. 400만~500만원은 됐을 거다.

-<길>을 영화로 만들기까지 많이 고민했겠다.
=그렇다. 처음엔 영화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남긴 기록으로 그분들을 기억하는 것도 의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대원의 죽음보다는 그분들이 얼마나 훌륭한 클라이머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어떤 사람들은 왜 좀더 울리고 감동을 주지 않았냐고 말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만들고 싶지는 않더라. 내가 방송사 PD는 아니잖나.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는 매운탕이 아니라 지리”라고 말한다. 양념을 넣지 않았다는 얘기다.

-영화에 넣지 못해 아쉬운 장면이 있나.
=1977년 원정대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지 못해 아쉽다. 그분들을 취재하며 에베레스트 첫 등정 당시의 육성 녹음과 자료를 모았는데 언젠가는 그것도 공개할 생각이다. <길>이 흥행에 성공하면 77선배님들의 얘기를 담은 DVD를 따로 제작할 거다.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인터뷰도 넣어서. 기록물로서 가치있는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한다.

-<길>로 감독 데뷔했다. 소감이 어떤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오해할까 걱정도 되지만,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앞으로는 불교적 색채나 인문학적 특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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