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인터뷰] 옴니버스영화 <도쿄!>의 메르드와 볼랑드 변호사
2008-11-05
글 : 김도훈
“도쿠루루루루루 하슈구르르르르”

-아야야야!
=볼랑드: 악. 왜 그러십니까?

-메르드가 물었어요.
=메르드: 그르그르르 메르메르 갸르갸르갸르.
=볼랑드: 메르드! (고양이를 어르듯) 쉿! 쉿!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한창 신경이 예민해 있어서 사람만 보면 무는군요.

-개도 아니고 이 무슨. 여튼 참 난감하네요. 변호사님 통역없이 그냥 대화하면 참 좋으련만. 불가능하겠죠?
=볼랑드: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이 친구의 언어를 지구상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거든요. 그게 저희 변호사 사무실의 장점입니다. 비용만 내신다면 어떤 언어를 구사하든 어떤 나라에서라도 변호를 맡을 수 있답니다.

-요즘 같은 대공황에 비용까지 여쭤보면 좀 가슴이 쓰릴 것 같아서 그만두겠습니다. 그나저나 메르드는 대체 어디서 왔답니까?
=메르드: 도쿠루루루루루 하슈구르르르르 와라라라라라.
=볼랑드: 도쿄의 하수구에서 왔지요.

-아니 그건 저도 압니다. 도쿄의 하수구에서 튀어나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지가 궁금한 거죠.
=볼랑드: 죄악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썩어빠진 마음속에서 살다가 튀어나왔습니다.

-역시 변호사시군요. 별 의미도 없는 그런 말을…. 여긴 배심원이 없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팩트만 좀 말해봐요.
=볼랑드: 이게 팩트지 뭐가 팩틉니다. 당신들의 마음속 깊이 숨은 썩어빠진 원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제2의 메르데. 제3의 메르데가 도쿄로! 서울로! 뉴욕으로! 런던으로! 모든 도시들에 나타나서 당신들을 단죄할 겁니다!

-관둡시다. 변호사랑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느니 고양이한테 프리스비 물어오는 걸 가르치는 게 낫죠. 어쨌든 이렇게 다시 살아나시기는 했지만 이미 한번 일본 법정에서 사형당한 처지 아닙니까. 사형선고에는 만족하셨습니까. 어때요 메르드씨?
=메르드: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볼랑드: 메르드 진정해! 말이 뭐 그렇습니까 기자님. 만족이라니요. 사형선고에 만족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답니까.

-죄송합니다. 언어선택이 논리적이지 못했네요. 만족이 아니라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메르드: 화따르게르지르 나따라.
=볼랑드: 화딱지가 났었다는군요. 당시를 회상하며 제가 몇 마디 덧붙이자면, 일본 법정은 정말로 비인도적입니다. 배심원 제도도 없는 그런 나라에서 제가 어떻게 제대로 된 변호를 하겠습니까. 게다가 고압적이기도 어찌나 더럽게 고압적인지.

-흐음. 프랑스에도 배심원 제도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볼랑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으로 탄생한 나라라 프랑스 법정은 배심원 제도 없이도 훌륭하게 돌아갑니다.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나라 아닙니까.

-호호호. 톨레랑스라니. 무슨 한국 80년대 학번들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사르코지의 시대에 무슨 톨레랑스.
=볼랑드: 오우 농! 농! 그런 이름은 즈느세파! 즈느세파! 즈느세파!

-근데 <메르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도쿄를 배경으로 영화를 하나 찍어보라고 돈을 쥐어줬더니 결과물은 혹독하게 일본인의 심경을 벅벅 긁으며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정신나간 괴물영화란 말이죠. 서울을 배경으로 이런 영화를 찍었다가는 광화문 사거리에 거꾸로 매달려 8·15 콜라로 물고문을 받으며 태극기를 씹어먹어야 했을 거예요.
=볼랑드: 그거야 저도 모르죠. 저는 캐릭터에 불과하니까요. 정 궁금하시면 레오스 카락스 감독님에게 물어보시죠.

-그분을 만나면 가상 인터뷰가 아니라는 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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