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달려온 10년. ‘독립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과는 유리된 그 무엇이라 여기던 시선을 뒤로하고 인디스토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그렇게 달려왔다. 올해는 한국독립영화사를 되새겨볼 때 꽤 의미있는 해다. 국내 독립영화 최초의 제도적 산실이나 다름없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지난 9월로 10주년을 맞았고, 오는 11일이면 그와 무관하지 않은 첫 독립영화 배급회사 인디스토리가 설립된 지 역시 1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영화에 목숨 건 시네필들의 전설적 동아리나 다름없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유구한 역사와 연대의 기억 속에서 한독협과 인디스토리는 그 애정과 갈증의 결정체였다. 특히 인디스토리의 역사는 바로 한국 독립영화가 좀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한국영화계에 지속적인 활력을 불어넣으며 그 존재를 확인해온 긍지의 기록이다. 그 중심에는 문화학교 서울의 ‘큐브릭 곽’ 사무국장 시절을 거쳐(이메일 아이디는 stanley다) 기꺼이 인디스토리의 산파 역할을 자임했던 곽용수 대표의 땀이 짙게 배어 있다.
10주년 기념 ‘오! 인디풀영화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디스토리의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총 40편의 영화(장편 12편, 단편 28편)가 11월9일부터 20일까지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 상상마당, 미로스페이스에서 상영되며 미국 독립영화의 살아 있는 정신이라 할만한 ‘존 카사베츠 어워드 영화제’도 함께 열린다.
-정말 피곤해 보인다.
=어제 도쿄필름마켓 출장 다녀왔고 바로 10주년 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 책자와 DVD까지 할 일이 많다. 게다가 감기까지 걸렸는데 잘 안 낫는다. 10주년 준비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건데, 역시나 올해가 돼서야 벼락치기로 진행되고 있다. (웃음) 회사 업무로 보자면 MBC드라마넷과 <판타스틱 자살소동> 이후 또다시 새로운 옴니버스영화의 공동제작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프리 프로덕션 단계다.
-10년 전 인디스토리를 맨 처음 설립할 때가 똑똑히 기억나나.
=물론. 그날 날씨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웃음)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독협을 만들면서 독립영화의 배급, 유통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정리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활동가 중에 당시만 해도 감독보다는 기획 마인드가 있던 <세발까마귀>(1997)의 오정훈 감독, 인디포럼의 장익준 등 지금은 얼굴보기 힘든 네 사람 정도가 모여서 그렇게 독립영화의 배급을 고민했다. 단편영화가 어떻게 유통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1주일에 한번 정도 모여서 회의를 가졌는데, 그때는 다들 ‘독립영화 배급이 말이 돼?’ 그러면서 체념했고 나만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달여 지나면서 나 역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명감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한독협과 분리된 형태를 꿈꿨나.
=당시에도 한독협 안에서 배급 일을 할 거냐 아니면 외곽에서 할 거냐 하는 토론이 많았다. 나는 외곽을 주장했고 결국 바람대로 이뤄졌다. 단체 성격도 회사 형식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단어 선택에서도 배급과 유통 둘 중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런 고민은 문화학교 서울 내에서 시작됐는데 199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기점으로 현실화됐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특별히 힘든 해가 있었나? 아무래도 초창기였나.
=오히려 초창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노하우가 쌓일 정도로 활성화된 게 없고 특별히 일거리가 쏟아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다 배급 일을 하게 된 상황이라 적응하는 게 더 중요했다. 월급 개념도 아니었고 없는 대로 해보자, 뭐 그런 분위기였다. 회사 형태로 가게 되면서 지인들을 통해 모은 자본금도 있었다. 진짜 힘들었을 때는 2006년 말 <KBS 독립영화관>이 폐지됐을 때였다. 금요일 새벽 국내외 장·단편 독립영화들을 상영하는 독립영화 전문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다. 사실 방송쪽 판권수익이 굉장히 안정적인 구조를 꾸려가게 해주는데, 그때는 이미 인디스토리 회사 규모도 커져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실감하지 못하다가 1년 뒤쯤 되니까 직접적인 여파가 왔다.
-그래도 지난해와 2007년은 꽤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맞다. EBS에서 <독립영화극장>이 생겨서 그 충격을 흡수했고, <살결>은 극장에서 잘 안됐는데 케이블TV쪽으로 부가판권이 팔리면서 그걸 계기로 치고 나가게 되었다. SBS에서는 <애니갤러리>가 생겨서 우리쪽 애니메이션들을 많이 사갔다. 그렇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주기적으로 치고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앉고 또 성장하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콘텐츠로 압도하는 힘이 부족하다보니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올해는 어떤가.
=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웃음) 아무래도 신임 위원장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정책적인 변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위원회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이제 독립영화 진영과 관련한 사업들이 많이 없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채널이 생겨도 우리 뜻대로 안되는 경우도 많고, 부가판권시장에서 기대할 게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자명한 일이라 우리는 지금까지 특별히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정책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래도 내년 상반기부터는 라인업도 괜찮고 해서 전반적으로 나아지리라 본다. 이거 참 돈 되는 걸 해야 되는데. (웃음)
-최근에 그렇게 ‘된’ 영화가 없었나.
=큰 수익보다 라이브러리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해서 방송쪽으로 들어가는 것도 꿈꿨는데 그건 엎어졌고, 또 다른 독립영화 배급사들도 선전하고 있다. 작품으로 치자면 우리는 <송환> 이후로 계속 굶었다. (웃음) <송환> 2만명 이후 1만명 넘는 영화가 없었다. 그동안 화제가 됐던 <후회하지 않아> <사이에서> <비상> 전부 우리 라인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올해가 너무 아쉽다. 우리쪽 작품이 아니라도 해마다 ‘뜨는’ 독립영화들이 관객몰이를 해줘야 하는데, 독립영화 진영에서 올해 가장 큰 화제가 됐던 <우린 액션배우다> 같은 영화도 유명세에 비해 관객 수는 그리 많이 들지 않았더라. 이런 비흥행의 날들이 계속되면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이 더 공고해질지도 모른다.
-최근 <고死: 피의 중간고사> <영화는 영화다> <미쓰 홍당무>처럼 대규모 예산을 들이지 않은 기존 충무로 상업영화들의 성공사례가 대안이라는 식으로 회자된다. 그런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안정적인 가운데 작업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인데, 개런티 적게 받고 엑스트라 줄이고 뭐 그러면서 비용을 줄이는 그런 방식들이 합리적인 비용 절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주어진 예산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거기에 끼워 맞춘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 영화의 규모는 이미 그전에 고려돼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그런 방식이 마치 정답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영화의 전체적인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몇년 전 우리가 ‘1천만영화시장’ 뭐 그런 얘기를 할 때 이미 다양한 제작 시스템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은 모든 영화인이 반성해야 할 것 같다.
-10주년 행사로 존 카사베츠 영화제를 꾸리는 것은 꽤 상징적이다.
=간결한 조명과 움직임 등 저예산영화, 독립영화의 살아 있는 정신이 바로 그다. 그런데 사실 영화 자체로는 재미없는 작품들도 많다. (웃음) 늘 5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주로 배우도 늘 2명이었고 어디 가면서 한참 얘기하는 걸 찍기도 하고 그랬다. 이번에 셀렉션을 하면서 그런 작품들은 뺐고 괜찮은 작품들 위주로 상영하려 한다.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시스템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작업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독립영화를 말할 때 늘 함께 불려나오는 이름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과는 지금도 여전한가.
=어제도 인디스토리 관련 인터뷰를 했는데, 대뜸 조영각과 내 이름을 대면서 세대교체는 언제 하냐고 그러더라. (웃음) 그래서 다음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내 밑의 다른 사람을 소개해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영각은 이제 다른 곳에서 일하지만 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갭’을 못 느끼겠다. 이번 10주년 행사 때도 ‘문화학교 서울의 밤’을 하는데 그때 함께할 거다. 그리고 주변에서 늘 조영각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 뭐 그런 우스갯소리를 많이 하는데 그게 요즘엔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그가 우리 진영의 대변자 같은 입장이 돼버렸고,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위치의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계속 그러다보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말 그가 국회로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오랜 친구들 생각하면 나처럼 지금까지 솔로인 사람만 외로울 뿐이다. (웃음)
-전에 장기적인 비전으로 아시아독립영화네트워크를 얘기한 적 있다.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콘텐츠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인디스페이스나 한독협과도 연계해서 아시아독립영화네트워크도 구상하고 있다.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알게 된 프로그래머가 있는데 그는 <눈부신 하루>로 인해 만난 사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얼마 전에 연락이 왔다. 포르투갈에서 제작하는 옴니버스영화가 한편 있는데 인도 감독이 스케줄을 펑크내서 혹시나 그 작품을 대신할 만한 한국 감독이 있겠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한국 감독을 소개시켜줬고 무사히 작업을 끝낸 적이 있다. 그 작품을 이번 영화제 때 깜짝 상영식으로 공개할까 하는데,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만나고 교류하면서 아시아 독립영화인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무래도 새로운 영진위 체제 내에서의 고충을 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조영각은 뭐 어차피 잘 안될 거야, 그러면서 이상한 위안을 주더라. (웃음) 그런데 당장 지원이 없어지고 그러면 감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까지 한다. 운영이나 방향과 관련해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는데 운영 자체를 발악을 해서라도 버텨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돌파구가 무엇이라는 얘기는 못하겠고, 수세적이긴 하지만 바뀐 수장에 대해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것 같다. 바뀐 정책에 대한 평가도 하고, 관련 사업이 많이 빠지고 그것을 대체할 내년의 사업들이 효율적인지 검증도 해봐야 한다. 공언한 것과 다른 정책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고 싸울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배급지원해줬더니 관객이 안 든다며 극장을 잡아주겠다고 했는데 멀티플렉스쪽이랑 얘기가 잘 안됐는지 그것도 취소가 됐더라. 끝까지 버티면서 정책에 대해 견제하고, 뭐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지난 국정감사 때는 살짝 당신이 언급되기도 하더라.
=지난 국정감사 때는 나도 모회사의 모대표로 언급이 됐더라. 내가 그 정도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고. (웃음) 이른바 학자들만 모여서 정책 입안을 한다는데, 정말 입신양명과는 아무 상관없이 시간 쪼개고 고민하면서 참여한 영화인들에게 관련 사업을 다 못하게 하면 현장 실무진은 다 빼고 가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상식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꽤 된다. 평소 아무 생각없이 일에 치여 살다가 한 5분 정도만 여유가 생겨도 그런 생각들로 갑갑하다.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는 욕심이 있다면.
=잘 버텨야 한다. 특히 요즘. (웃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즐기는 것과 책임감이 반반이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들을 이어오면서 여유로워졌다. 우리 이후에 생긴 배급사들도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서로 윈-윈했으면 좋겠다.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가 있으니까 예전에 못하던 것도 하게 됐고, 한달에 한편씩 배급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독립영화를 고를 때도 다양한 선택의 폭을 가져야 하니까. 나는 욕심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정도로 소심한 편인데 이제 욕심을 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