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미라클>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세계적 수준임을 증명한 ‘파리의 심판’을 다룬 영화다.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지 20여년 남짓했던 캘리포니아 와인이 수백년의 전통을 가진 프랑스 와인을 맛으로 이겼다는 점에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역사적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본다.
1. 파리의 심판
1976년은 미국이 독립한 지 200주년을 맞는 해였지만, 미국 와인으로서는 독립 원년에 해당한다. 그해 5월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 테라스에서 열린 와인 비교 시음회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은 세계 최고라는 권좌에 푹신하게 눌러앉아 있던 프랑스 와인을 당당히 물리쳤다. 이 행사는 와인판매상인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의 제안으로 열렸다. 그는 이 행사를 통해 캘리포니아 와인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려 했던 것. 심사는 와인의 라벨을 완전히 가린 뒤 오로지 잔에 담긴 내용물로만 진행됐다. 와인잡지 <라 레뷔 뒤 뱅 드 프랑스> 편집인 오데트 칸, 프랑스 와인연구소의 미셸 도바즈, 소믈리에 크리스티앙 반네케 등 11명 중 9명이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합산한 결과는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레드와인(카베르네 소비뇽) 부문의 1위를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생산된 스태그스 리프 와인 셀러스 1973년산이 차지하면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샤토 무통 무쉴드 1970년산과 샤토 몽로즈 1970년산은 2, 3위로 밀렸다. 화이트와인(샤르도네) 부문에서도 나파 밸리의 샤토 몬텔레나 1973년산이 1위를, 역시 나파 밸리의 캘론 비녀드 1974년산이 3위로 뽑혔다. 프랑스 심사위원들은 이 결과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스퍼리어는 “결과가 나온 뒤 한 여성 심사위원은 심사표를 고치게 도로 달라고 요구했고 내가 행사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고 회고한다. 이날의 일은 현장에 유일하게 있던 언론인 조지 태버에 의해 <타임>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은 당시 기사의 제목이었다. 10년 뒤인 1986년과 그리고 ‘파리의 심판’ 30주년을 맞는 2006년에도 같은 행사가 열렸지만 결과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연전연승이었다.
2. 캘리포니아 와인
19세기 북캘리포니아 소노마에 첫 포도농원이 생기면서 본격화된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은 19세기 중반 골드러시로 와인 수요가 늘어나면서 활성화됐다. 19세기 후반 포도를 말라죽이는 해충 필록세라가 유럽을 휩쓸고 북미 대륙에 상륙하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한 캘리포니아 와인은 1920년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 이 어이없는 조치로 포도밭은 갈아엎어졌고 막 싹을 틔우려던 미국 와인산업은 돌이킬 수 없는 듯 보였다.
1933년 금주법이 사라졌지만 한동안 후유증을 겪던 캘리포니아 와인업계는 1960년대 수많은 와인업자들이 소노마와 나파 밸리 등지에 농원을 꾸리면서 부활하기 시작한다. ‘파리의 심판’은 극적인 도약을 위한 발판이었다. 현재 미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계 4위의 와인 생산국이며 이중 90%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이중에는 E & J 갈로 와이너리나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처럼 대형 업체도 존재하지만, 하이츠 셀러스나 스태그스 리프처럼 소량 생산으로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컬트 와인’도 존재한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취임만찬에 사용된 클로 뒤 발도 캘리포니아 ‘컬트 와인’이다. 한편, ‘파리의 심판’의 주인공이었던 바렛 가문의 샤토 몬텔레나는 올해 7월 보르도의 와인제조사 코스 데스투넬에 넘어갔다. 이 거래는 76년 이후 수모를 겪어야 했던 프랑스 와인산업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3. <와인 미라클>
<와인 미라클>은 ‘파리의 심판’을 소재로 한 첫 장편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지 태버의 논픽션 <파리의 심판>을 원작으로 삼는 동명의 영화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당시 이 행사를 주최했으며 <파리의 심판> 제작에 개입하고 있는 스티븐 스퍼리어는 <와인 미라클>의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에 대한 묘사가 “모욕적”이라면서 이 영화가 “명예를 훼손하고 사실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와인 미라클>이 샤토 몬텔레나의 와인제조 기술자였던 마이크 그르기치를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 점 또한 스퍼리어의 불만이었다. <와인 미라클>이 그르기치를 무시한 이유는 이 영화가 샤토 몬텔레나의 소유주였던 짐 바렛의 도움과 자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탓으로 보인다. 바렛과 그르기치는 ‘파리의 심판’의 공적을 두고 다퉈왔던 것. 하여간 <파리의 심판>은 영화화 계획조차 명확히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두 영화의 시음대결에서는 <와인 미라클>이 승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