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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마니아] “원표를 모르면 끝이야!”
2008-11-14
글 : 주성철

몇주 전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를 보면서 재미난 경험을 했다. 윤하와 SG워너비를 데려다놓고는 윤종신과 김구라가 마구잡이로 옛 홍콩영화와 배우들을 물어보며 세대 차이를 확인했던 것. 김구라가 “외팔이 왕우를 몰라?”라며 ‘버럭’하고, 윤종신이 “오요한 검색해봐!”라며 기어이 자기의 옛 추억을 강요했다. 김구라는 젊었을 적 인천 극장가를 꽤 누비며 놀았던 것 같고, 윤종신은 가화삼보(홍금보, 성룡, 원표)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 같아 반가웠다. 하지만 SG워너비의 김진호만이 <첩혈쌍웅>의 이수현을 안다고 대답했을 뿐 그들은 종초홍도 원표도 몰랐다. 원표를 모른다는 건 충격이었다. 성룡과 홍금보처럼 감독이건 무술감독이건 홍보대사건 눈에 띄게 외부활동도 하면서 좀 ‘설치고’ 다녀야 사람들이 알아주는 건가, 하는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1957년생, 본명 하령진. 어려서 같은 경극학원 선배들이었던 성룡, 홍금보와 트리오를 이뤄 <프로젝트A>(1983), <쾌찬차>(1984), <복성고조>(1985) 등에서 맹활약한 원표는 10대 초반 스턴트맨 단역으로 출발해 오직 배우로만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물론 그의 유일한 (단독)연출 작품 <서장소자>(1992) 같은 영화나 다수의 무술감독 참여 작품도 있긴 하지만 성룡과 홍금보에 비하면 천생 배우다. 그것은 또한 연기 그 자체보다 무술이라는 연기 외적인 테크닉이 배우로서 더 중요했던 홍콩영화계의 지난 황금기를 그대로 대변해준다.

경력이나 매력 면에서 원표가 성룡과 홍금보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 그 형들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고 힘든 스턴트는 도맡아했던(<프로젝트A>에서 성룡이 시계탑에서 추락하는 장면을 원표가 대신했다는 얘기도 있고, 심지어 <샹하이 눈>에서는 이름없는 인디언 대역까지 해줬다는 얘기도 있다) 그가 진짜 사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액션 설계의 전체적인 창의력은 성룡보다 떨어질 수 있겠지만 순수한 개인 스턴트의 난이도로는 원표가 그들 중 최고다.

개인적으로는 성룡 없이 원표가 홍금보와 함께했던 골든하베스트 영화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잡가소자>(1979), <패가자>(1981), <부귀열차>(1986), <동방독응>(1987) 등은 둘의 호흡은 물론 360도 돌려차기, 뒤로 돌아 뒷사람 싸대기 때리기 등 원표의 화려한 개인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주성치의 ‘<소림축구>의 전편’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파우>(1983) 역시 즐거운 작품이다. 이들 영화에서 원표의 매력이라면 ‘영원한 소년’이라는 점이다. 성룡 역시 딱히 유부남을 연기한 적 없이 평생 총각으로 살았지만 주로 경찰을 연기하며 늘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다면 원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움을 줬던 사람이다. <촉산>(1983), <공작왕>(1988) 같은 판타지 무협영화에 어울렸던 것도, 30대 중반의 나이로 <황비홍>(1991)에 청년 ‘양관’으로 출연해 무려 자기보다 6살 어린 이연걸(황비홍 역)의 제자처럼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라디오스타’에서 급기야 폭발했던 김구라의 멘트가 잊혀지지 않는다. “원표를 모르면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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