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고 럭키>를 절반 정도 보다가 짜증이 확 났다. 포피라는 여자주인공 때문이다. 그녀는 히피 스타일의 옷을 칭칭 감고 다니는 서른살 초등학교 선생인데, 거의 초현실적일 정도로 매사에 긍정적이다. 그게 나쁘냐고? 이런 여자 은근히 성가실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자전거를 도둑맞고도 “어머, 자전거에게 작별인사 할 시간도 없었네”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집까지 걸어가는 여자. 친한 친구로 지내다가는 복장이 터질 거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를 도무지 못 견뎌하는 냉소적인 관객일지라도 절반만 보다가 극장을 뛰쳐나가지는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해피 고 럭키>는 후반부로 갈수록 포피라는 정신나간 여자의 속내를 천천히 이해하도록 만든다. 절반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현실과 접목시킬 줄 아는 대가 마이크 리의 공이기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주연배우 샐리 호킨스의 덕이기도 하다. 호킨스가 도무지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붕 뜬 캐릭터를 철저하게 통제하며 연기하지 않았더라면 포피는 그냥 슬랩스틱코미디 캐릭터로 잊혀졌을 것이다. “나도 천성적으로 명랑한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내 자신을 연기한 건 절대 아니다. 캐릭터 속으로 한 발짝 들어가고, 촬영이 끝나면 바로 뛰쳐나와야 한다. 그건 마이크 리의 원칙이기도 했다.”
샐리 호킨스는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지만 꽤나 정석 코스를 밟은 배우이기도 하다. 영국의 유명 아동문학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BBC> 라디오의 코미디쇼 작가로 일했고, 로열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이후도 승승장구다. 마이크 리의 <전부 아니면 무>가 데뷔작이고, 또다시 리와 함께한 <베라 드레이크>에서는 불법 낙태를 원하는 상류층 여인을 연기해 호평받았다. 아마도 몇몇 국내 팬들은 <BBC> 드라마 <핑거스미스>로 먼저 호킨스의 이름을 외웠을 것이다. 사라 워터스의 원작을 토대로 한 <핑거스미스>에서 호킨스는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들어간 대저택에서 상류층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레즈비언 도둑이었다. <해피 고 럭키>로 호킨스의 매력에 도취된 관객이라면 <핑거스미스>의 DVD를 한번 찾아보시라. 깜짝 놀라게 될 거다. 포피는 철저한 연기였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