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인 ‘Bottle Shock’는 뜻이 뭡니까.
=와인을 병에 주입하거나 와인을 선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주의로 와인의 향이 변질되는 경우를 말하지. 다른 표현으로는 ‘Bottle Sickness’라고도 하네. ‘파리의 심판’이라 불리는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의 비밀 시음회 당시, 캘리포니아 샤도네이(화이트 와인) 대표로 나왔던 샤토 몬텔리나는 Bottle Shock의 산물이기도 하다네.
-호오. 그렇군요. 그나저나 프랑스 와인업계로부터 엄청 미움 사셨겠어요.
=처음엔 좀 무섭더라고. 프랑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성질 급하고 자존심 세기로는 천하에 따를 자가 없는 족속들이잖아. 그래서 처음 ‘파리의 심판’이 벌어졌을 때는 파리행 콩코드 표를 끊지도 못했어. 샤를 드 골에 도착하는 순간 와인병 테러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캘리포니아 와인에 완전히 감화되어서 블라인딩 테이스트(와인의 상표와 병을 가리고 진행하는 시음회)를 진행한 건 또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원래는 프랑스 와인을 수입하는 수입상이셨잖아요.
=그랬지. 파리에서 고급 와인숍 ‘카브를 라 마들렌’을 경영하고 있었던데다가 와인 학교인 ‘아카데미 뒤 뱅’도 내가 설립한 거였으니까. 블라인딩 테이스트를 해보려고 결심했던 건 순전히 어떻게든 장사에 도움될 일 하나 벌여보겠다는 거였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76년 당시 누가 캘리포니아 와인 따위를 믿었겠어. 내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와인을 심사에 끌어들인 건 그냥 대회 구색 맞추기였지 뭐.
-결과를 보고 깜짝 놀라셨겠어요.
=아주 난리가 났었지. 프랑스 와인을 마시고 “향기가 없는 걸 보니 캘리포니아 와인이 틀림없군”이라고 말했던 그 소믈리에는… 얼굴이 잘 익은 포도처럼 붉으락푸르락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어. 그런데 사실 그건 아주 소규모의 시음회였다는 걸 기억해야 해. 아무도 거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네. 승패가 분명한 게임을 누가 보고 싶어 했겠나.
-하지만 결국 그날의 시음회는 와인의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그게 그 빌어먹을 조지 테이버 때문이야. <타임>의 프랑스 특파원 말일세. 그 양키놈이 <타임>에 보도하지 않았더라도 ‘파리의 심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거야. 게다가 ‘파리의 심판’이라는 말도 테이버 그놈이 뽑은 기사 제목이었다니까.
-문제는 파리의 심판이 단 한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는 겁니다.
=1986년과 2006년에도 한번씩 열렸지. 86년에도 1, 2위는 모두 캘리포니아산이었어. 2006년에는 내가 직접 참가하는 시음회가 열렸는데 그때도 역시 캘리포니아산이 압승이었고. 1위부터 5위까지를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생산된 와인이 모조리 차지했다는 거 아닌가. 불쌍한 보르도!
-영화 <몬도비노>는 보셨어요?
=본 적 없는데. 그건 왜.
-그 영화에서 구식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프랑스 농부가 이렇게 말했었죠. “현대 세계는 ‘유통 독점’이란 파시즘을 만들어냈다. 이 독점 형태는 미국과 프랑스처럼 독점을 비난해온 민주국가에 뿌리를 내렸다. 프랑스는 독재를 용납 못해 왕을 사형시킨 국가 아닌가. 그런데도 까르푸 같은 대형마트의 왕들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다니 어떻게 된 건지. 유통 독점이 지속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뻔한데도 정부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이제 품질 좋은 포도주는 사라지고 똑같은 포도주가 수백만명씩 생산될 거다.”
=그거야 고집센 농부들 불평이지.
-어쨌거나 미국이 ‘파리의 심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와인을 거대한 산업으로 바꾸어놓은 건 맞잖아요. 몬다비 가문이 보르도의 와이너리를 돈으로 모조리 사들인 것도 그렇고요. 보르도 와인은 더이상 옛날의 보르도 와인이 아니라던데요.
=만약 와인이 다국적 자본에 의해 생산과 유통이 세계화되지 않았다면 자네 같은 한국 사람들이 싼값에 좋은 와인들을 마실 수 있었겠는가. 어림없지.
-왠지 슬픈데요.
=사치스러운 애도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