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GO
2001-11-20
보류

■ Story

자신의 정체성은 재일한국인이 아니라, 코리안 재퍼니즈라고 믿는 고등학생 스기하라(구보즈카 요스케). 아버지는 하와이 여행을 위해 조선 국적을 한국으로 바꾼다. 거기에 발맞춰 스기하라는 민족학교가 아닌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러나 ‘코리안 재퍼니즈’임이 알려지고, 스기하라는 학내 싸움꾼들의 도전을 받는다. 권투선수였던 아버지에게서 배운 권투실력과 빼어난 기지 덕분에 24연승을 달리는 스기하라. 어딜 가더라도 고단한 날들을 보내던 중,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사쿠라이(시바사키 고우)라는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순식간에 빨려들며 그녀의 집에 가서 인사까지 드리지만, 스기하라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응어리가 있다. 코리안 재퍼니즈라는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은 것이다.

■ Review 스기하라는 조선중학교를 나와 일본 고교로 진학한 ‘코리언 재퍼니즈’ 고교 3년생. 그에게 중요한 건 국적이나 학교가 아니라 오늘 여기,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연애다. 그래서 가끔 이야기가 심각해지려고 하면 스기하라는 어김없이 “이건 나의 연애 이야기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주위를 환기시킨다. 시작은 경쾌하다. 빠르게 전환되는 컷과 탁탁탁 질주하다 불쑥 멈춰서는 화면은, 영사사고 아닌가 생각할 만큼 갑작스럽고 재치있다. 그건 스기하라의 격렬하면서도 경쾌한 세상살이의 ‘스텝’을 전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스기하라는 재일한국인 3세다. 그는 일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또 살아간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아마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이 아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한국계 일본인도 가능한 것 아닌가? 지난해 나오키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3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는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정체성의 문제를 ‘심각한 가벼움’으로 돌파했다. 작가는 무거운 현실을 발랄한 문체로 표현했는데, 영화 <GO>도 처음에는 그런 방법론을 적극 활용한다.

이미 소설에서 완성된 캐릭터들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스기하라 가족의 이야기를(연애담이 아니라)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짧게 커트된 편집과 특툭 냉소적으로 던지는 독백 덕분에 무거운 성장담은 초반엔 아주 쾌활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중반 이후 가장 친했던 친구 정일의 돌연한 죽음, 미래가 없는 사쿠라이와의 연애 등 ‘현실’이 나열되면서, <GO>는 지나치게 무거워지고 늘어지고, 그 결과 재일동포의 암담한 사랑과 청춘을 그린 평범한 청춘드라마 안에 갇혀버린다. 드라마가 감당하기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것일까. 위정훈 osc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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