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인터뷰] <해피-고-럭키>의 포피
2008-12-10
글 : 김도훈
어젯밤에 입양한 제 스웨터 어때요?

-행복하십니까?
=물론이죵.

-뭐가 그렇게 행복하십니까?
=아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다 행복하지요. 깔깔깔.

-세계경제가 이 모양인데 혼자만 행복하십니까.
=어머, 그렇군요. 세계경제가 좋지 아니하구나. 그래도 그럴수록 더 행복하게 살아야죠. 호호호.

-하긴 IMF시대 이후 최악의 경제환란에 빠진 한국과 지난 10년간 경제호황을 누려온 영국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외신을 보니 영국도 올해부터는 사정이 만만치 않을 거라던데.
=어머. 그래요? 그러고보니 캠든 타운이랑 브릭 레인 시장에서도 야채 가격이 조금 오르긴 했던데. 저는 항상 유전자 조작 걱정없고 농민들에게 수익이 잘 돌아가는 유기농 야채만 사먹으니까 괜찮아요. 유기농 제품들이야 마트에서 대량으로 파는 야채보다는 언제나 조금은 비쌌으니까. 그 정도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감수해야죠.

-그래도 사정이 쪼끔 괜찮은 나라에 사시다보니 현실감각이 덜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현실을 깨우쳐드리죠. 지금 어디 사세요?
=친구랑 캠든 타운에 세들어 사는데. 곧 혼자 살 집을 좀 구해볼까도 싶어요.

-음화화화화. 잘 들어보아요. 현재 영국 주택가격 상승률은 미국보다 더 높습니다. 소비자 차입비율이 유럽 타국들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죠. 영국 실질 주택가격이 97년 이래 10년간 무려 205%나 뛰었다는 건 아세요? 미국과 프랑스는 그에 비하면 겨우 각각 103%, 137% 올랐을 뿐이라고요. 게다가 영국 가구 모기지 부채비율은 가처분 소득의 125%나 됩니다. 이제 아시겠죠. 인플레이션이 곧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호호호.
=어머. <이코노미스트> 기자신가봐요?

-아뇨. 영화잡지 기자인데요.
=어쩜 경제에 그렇게 빠삭하세요?

-구글 검색의 결과죠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여기나 그 동네나 그렇게 배실배실 웃으며 행복하게 살 만한 처지는 아니라는 것만 공유하면 되는 거지요.
=불행한 시대일수록 행복하게 살아야죠. 그래야 기운도 나고요.

-아놔 말 안 통하네 이 여자. 그런데 옷 그렇게 입고 출근해도 돼요?
=어머. 제 옷이 왜요? 이거 지난 주말 캠든 벼룩시장에서 산 스웨터인데. 좌판에 깔려 있는 얘랑 만나자마자 너무 색깔이 화사해서 기분이 확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입양했어요.

-으악.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합니까.
=응? 제가 어떻게 말했는데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여자들 말투가 바로 그거예요. 무생물을 생물로 의인화해서 말하는 거 말입니다. 새 코트 입고 와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여자들 꼭 있죠. “이 아이 어제 동대문에서 입양했어요.” 아놔 진짜. 코트가 캄보디아 꼬맹입니까. 왜 코트가 아이가 되어야 하고, 그걸 또 왜 ‘입양’한다는 건지.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들어요. 그렇게 말하는 거 하나도 안 귀엽거든요.
=어머. 죄송해요.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그러니까 이해해주세요. 요전번에 자전거를 길거리에서 도둑맞았는데. 흑. 너무 슬펐어요. 포피는 자전거랑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했거든요.

-엉엉. 차라리 물건을 의인화해서 아양떠는 건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해보겠어요. 제발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일만은 삼가주세요. 오빠 민지 와쩌요 뿌우. 이런 거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기자님은 그냥 여자가 싫으신가봐요?

-오늘은 여자고 남자고 상관없이 호모사피엔스라면 다 싫군요. 여하튼 저는 당신이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낙천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일부로 행복한 척하는 것 같아요. 부러 낙천적인 척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쓰럽다고요.
=어머나. 저를 그렇게나 걱정해주시는군요. 감사해요.

-제가 졌습니다. 졌어요. 완전히 그로기. KO패.
=세상사 지고 이기고가 있나요.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죠.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다음 인터뷰는 <좋은 생각> 기자님과 계속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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