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수출> Import/Export
2007년 감독 울리히 사이들 상영시간 120분 화면포맷 1.78: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독일어 등 자막 한글 출시사 대경DVD
화질 ★★★★ 음질 ★★★☆ 부록 없음<유 더 리빙> Du Levande (You, the Living)
2007년 감독 로이 앤더슨상영시간 90분 화면포맷 1.66: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2.0 스웨덴어자막 한글 자막출시사 대경DVD
화질 ★★★★ 음질 ★★★★ 부록 ★☆<알렉산드라> Aleksandra
2007년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상영시간 91분 화면포맷 1.66:1 비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러시아어자막 한글 자막출시사 대경DVD
화질 ★★★ 음질 ★★★☆ 부록 없음<황혼의 빛> Laitakaupungin valo (Lights in the Dusk)
2006년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상영시간 74분 화면포맷 1.80: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핀란드어자막 한글 자막출시사 대경 DVD 화질 ★★★ 음질 ★★★☆ 부록 ☆<올 어바웃 러브> It's All about Love
2003년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상영시간 100분 화면포맷 1.78: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영어자막 한글 자막출시사 대경DVD
화질 ★★★★ 음질 ★★★☆ 부록 ★☆
얼마 전부터 한 DVD 제작사가 유럽 예술영화 DVD를 줄줄이 출시하고 있다. 십여편에 이르는 DVD를 쭉 늘여놓으면 우리에게 이런 유의 영화가 소개되는 행태가 보인다. 어떤 영화는 개봉되지 못한 채 홈비디오로 직행했고, 어떤 영화는 고작 며칠 동안 개봉한 뒤 기억에서 사라졌고, 어떤 영화는 몇몇 영화제에서 소개된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과 비슷하다. 누군가는 소중한 친구로 남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누군가는 존재의 기억마저 까마득히 잊혀져간다. 출시작 중 다섯 DVD를 골랐다. 모던시네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 감독들의 작품이 행여 망각될까 걱정돼서다.
인간은 재화와 같다 <수입/수출>
<수입/수출>은 <개 같은 날>로 주목받은 울리히 사이들의 근작이다. 폭발 직전의 외로운 영혼들을 기록했던 사이들은 시선을 돌려 자본주의의 세찬 현실을 풍자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올가는 급여를 계속 체불하는 열악한 직장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건너간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고향에 두고 온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를 이중으로 괴롭힌다. 반면 빈둥대며 사는 무능력자인 파울은 양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에서 우크라이나와 슬로바키아로 향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그는 고물 게임기를 설치해 돈을 벌어보려는 양아버지와 매번 충돌한다.
사이들은 멀쩡한 사람들이 돈을 찾아 유목민으로 떠도는 현실을 비판하고, 위치를 바꿔 이동하는 인간이 수입, 수출되는 재화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카메라가 꼼짝하지 않고 누운 환자들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인간은 그들 환자처럼 움직이지 못하다 곧 죽을 거란 이야기다.
유령들의 파티 <유 더 리빙>
로이 앤더슨은 영화를 빌려 인간희극을 완성하려는 작가다. 전작 <이층에서 들려오는 노래>의 후속편 같은 <유 더 리빙>은 유령들의 파티로 관객을 다시 초대한다. 핏기없는 사람들에 맞춰 모든 게 느릿느릿 움직이고, 파스텔 톤의 멀건 세트는 활기찬 생명이 숨쉴 공간이 못 된다. 그러나 괴테의 글- “그대, 살아 있는 자여. 따뜻한 침상을 기뻐하라”- 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영화는 삶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
루이스 브뉘엘의 <자유의 환영>으로부터 ‘부조리하게 병렬된 이야기구조’를 따온 영화는 주인공 없는 영화의 인물 하나하나가 우리 자신이라고 역설한다. 아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위해 노래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은 사람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기꺼이 그런 행동을 취할 때 당신은 회반죽을 뒤집어쓴 유령에서 가치있는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사이의 교감이자 조화이며, 내내 우스꽝스럽던 영화를 진정한 희극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힘이다.
전쟁의 폭력 고발 <알렉산드라>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알렉산드라>는 손자를 면회하고자 길을 나선 할머니의 이야기다. 병영과 군인, 가족관계는 소쿠로프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즐겨 다룬 소재였던 바, <알렉산드라>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손자를 방문한 이유는 단순하다. 7년 동안 보지 못한 손자가 너무 보고 싶었고, 혼자 살기 힘든 탓에 그가 곁을 지켜주길 바라서다. 오랜 세월을 견딘 노인의 어수룩한 논리 앞에서 러시아와 체첸공화국간에 위치한 심각한 정치상황의 벽은 무너진다. “전쟁이 좋아요? 이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부대장은 아무 말도 잇지 못한다. 지쳐 있던 어린 병사들은 노인의 얼굴에서 평화와 향수를 느낀다.
<알렉산드라>는 어쩌면 순진한 영화일지 모르나, 영화에서 할머니 알렉산드라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인물은 비슷한 연배의 체첸 노파뿐임을 우리는 안다. 전쟁의 폭력에 휩싸이고 무기의 힘만을 믿는 인간은 노인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친 자에겐 그런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 노동자의 비극 <황혼의 빛>
우울한 색채의 필름누아르인 <황혼의 빛>은 현대사회를 버티며 사는 핀란드 노동자의 비극을 다룬다. 쇼핑몰의 야간경비원인 코이스티넨은 막연히 성공을 꿈꾸면서 무료한 삶을 보낸다. 쇼핑몰의 화려한 물건과 그가 사는 허름한 집이 대비되고, 멋진 여성을 갈망하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노상카페의 여자뿐이며, 동료들은 그를 불신하고 비웃는다. 어느 날, 금발 여인의 유혹에 그는 눈이 먼다. 범죄조직이 정신을 빼앗긴 그를 이용해 강도짓을 벌이자, 그는 직장에서 해고당한 데 이어 2년형을 선고받는다.
<황혼의 빛>은 이야기와 인물의 본질과 관련된 사항 외에는 모든 것을 제거한 작품이다. 대사는 간결하고, 불필요한 행동은 전무하고, 극도로 단순한 플롯에 따라 사건이 전개된다. 영화의 상영시간은 70여분에 불과한데, 잉여의 감정이 투과된 자리에서 진실의 순수함만이 빛난다. 가히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의 재래를 보는 듯하다.
감각적인 유럽식 SF <올 어바웃 러브>
첫 번째 도그마영화인 <셀러브레이션>을 연출해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상을 거머쥔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올 어바웃 러브>를 만들면서 도그마의 선언을 뒤엎었다. 그는 핸드헬드와 자연광을 저버렸고, 보란 듯이 특수효과를 도입했다.
2021년의 무더운 여름, 한 남자가 생애 마지막 7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별거 중인 부인과 이혼하기 위해 폴란드에서 뉴욕으로 온 남자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주변상황을 눈치챈다. 아내가 음모에 빠졌다며 도움을 요청하고,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죽고, 중력을 상실한 인간들이 공중에 떠다닌다. 두 사람은 힘들게 도주에 성공하지만, 사랑의 부재로 외로운 지구가 점차 얼어붙는다.
지구의 종말에 관한 묵시록이자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인 <올 어바웃 러브>는 같은 해에 나온 마이클 윈터보텀의 <코드46>와 비교될 만하다. 왠지 아귀가 맞지 않는 이야기에 스릴 또한 모자라지만, 이미지의 과장을 배제한 감각적인 유럽식 SF영화를 맛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다섯 DVD의 영상은 전체적으로 평균 수준을 유지한다. 단 일부 지적할 점이 있다. <황혼의 빛>의 붙박이 영어자막, <알렉산드라>의 비아나모픽 영상,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수입/수출>의 일부 장면 삭제는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DVD로조차 소개되지 못하는 수많은 수입 예술영화에 비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올 어바웃 러브>의 DVD는 인터뷰(8분)를, <유 더 리빙>의 DVD는 배경세트 모음(8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