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의 특별전이 12월16일(화)부터 31일(수)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상영작은 <사냥> <사촌 앙헬리카> <까마귀 기르기> <카르멘> <마법사를 사랑하라> <아, 카르멜라!> <탱고> <보르도의 고야> <일곱번째 날> <이베리아> <파두> 등 11편이다. 카를로스 사우라의 초기작에서부터 근래에 접하기 힘들었던 그의 최근작까지 다양하다.
1959년 <개구쟁이들>로 데뷔할 당시 카를로스 사우라의 영화는 스페인 네오리얼리즘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사실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상 그의 영화는 상징과 은유 등 좀더 유려한 수사학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그런 양식미를 바탕으로 프랑코 정권의 독재 기간에는 참여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 그의 예술혼을 사로잡은 플라멩코를 비롯하여 갖가지 민족적인 음악과 회화에 관해 꾸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상영작 중 <사냥> <사촌 앙헬리카> <까마귀 기르기> 등이 1960, 70년대 정치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던 카를로스 사우라의 참여적 작품일 것이다. 세 중년 남자와 한명의 젊은이가 토끼 사냥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냥>은 한때 스페인 내전의 전쟁터였던 장소에서 벌어진다. 이 영화는 결국 단순히 토끼 사냥이 아니라 인간끼리 총질을 해대는 살육의 현장을 재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여기에서 폭력은 남김없이 모두 고개를 든다. 아마도 이 점 때문에 ‘폭력의 피카소’라는 별명을 지닌 샘 페킨파가 이 영화를 높이 치켜세웠을 것이다. <사촌 앙헬리카>는 유년 시절에 살던 마을로 돌아와 기억을 더듬어가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역시 스페인 내전에 관한 암시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의 개인의 기억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면모를 보인다. <까마귀 기르기>는 국내에서도 몇 차례 선보였던 카를로스 사우라의 대표작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산층에서 태어난 세 자매가 부모를 모두 잃은 다음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주·제주·대구·대전·광주 상영도 계획중
하지만 카를로스 사우라는 정치에서 예술 그 자체로 방향을 선회한 지 오래됐다. 카를로스 사우라는 영화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영화로 다뤄보고 싶어하는 감독이다. 그가 자신이 흠모하는 루이스 브뉘엘만큼 위대한 감독은 못되지만 흥미로운 감독에 속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춤과 노래와 회화에 대한 관심표명은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적이다. 늘 탐구자의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흠뻑 매혹된 탐미자로서의 자세도 갖췄다.
상영작 중 <카르멘>은 <피의 결혼식> <카르멘> <마법사를 사랑하라>로 이어지는 이른바 ‘플라멩코 삼부작’ 중 두 번째다. 카르멘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리허설을 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한국에서 개봉하며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탱고> 역시 춤에 관한 영화다. 한편 카를로스 사우라의 가장 최근작이라고 할 <파두>는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에 대한 독특한 방식의 음악영화인데 연극적 행위들, 파두 연주가들의 연주, 또는 안무나 영화 속 장면의 삽입 등을 번갈아 보여주며 일종의 파두의 기원에 관한 총체극을 만들어간다. 한편 <보르도의 고야>에서는 스페인의 유명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회화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다. 말년의 고야를 등장시키지만 실은 고야에 관한 전기가 아니라 고야의 그림들에 대한 초현실적 여행에 가깝다. 갖가지 고야의 그림들이 꿈처럼 흘러나오고 시간은 전후로 오가는데, 늘 브뉘엘을 존경했던 카를로스 사우라가 브뉘엘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카를로스 사우라 특별전은 서울에서 시작한 뒤 전주·제주·대구·대전·광주 등으로 지역순회상영도 계획 중이다. 자세한 문의는 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