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67번째인 이번 마지막회는 최영도씨가 기증한 고 최영달씨의 수집품 중 <불사조의 언덕>(1955) 전단지입니다.
1955년은 6·25전쟁 이후 정부의 입장세 면세 조치가 있었고 영화인들 역시 ‘재건’ 활동을 활발히 했던 중요한 해이다. <춘향전>(1955)의 성공이 영화자본을 끌어들이면서 활기를 띠었으며, 신상옥이 이광수 원작의 <꿈>을 내놓고 김기영 감독이 <주검의 상자>로 데뷔하는 등 1960년대를 이끌었던 감독들이 신인으로 등장해 세대교체를 예감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불사조의 언덕>은 베테랑 전창근 감독이 수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공보처가 제작하고 이형표 감독이 각본을 썼으며 한형모 감독이 촬영을 맡은 작품으로 이념의 대립보다는 유엔군에 입대한 박 대위(김정유)와 미군 병사들 사이의 우정을 그렸다. 부상을 당하고 길을 잃은 박 대위와 미군 병사가 산골짜기에 사는 장씨 일가(송억, 한은진, 나애심)의 도움을 받는데, 이들을 추격하는 중공군이 이들을 붙잡기 직전에 같은 부대원들에게 구출된다.
1907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의 전창근 감독은 서울에서 중앙고보와 중동고보를 거쳐 19살인 1926년 상하이로 건너가 12년간 생활했다. 22살에 상하이의 대중화백합영편공사에 입사해 안중근의 일대기를 담은 <애국혼>(정기탁)의 각본을 쓰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고국에 돌아왔고 1941년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한 <복지만리>에서 감독·각본·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가 가진 배일사상으로 100일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자유만세>(최인규, 1946)에서 각본과 주연을 맡았고, 김승호가 데뷔한 <해방된 내 고향>, <민족의 성벽>(1947) 등의 해방기 계몽적 색채를 띤 작품은 물론 10만 관객을 동원한 엄앵란의 데뷔작 <단종애사>(1956), 한국연예사(임화수)와 쇼브러더스가 함께 제작한 최초의 한·홍 합작영화 <이국정원>(1957)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남겼다. <자유만세>, <아! 백범김구선생>,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순교자>(유현목, 1965) 등에서는 배우로서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