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윤석] “<타짜>때보다 더 무서워질까 걱정”
2008-12-24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올해 6개 영화제 남우주연상 독차지한 김윤석, 2009년을 말하다

때로 사람은 기적과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김윤석에게 2008년은 그런 해다. 첫 주연 데뷔작인 <추격자>로 그는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국내의 6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을 독차지했다. 이 ‘몰아주기 수상’이 수상치도 않은지 모두들 긍정의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한국영화의 침체기에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서도, 한 장면을 찍자고 무려 40시간 넘게 달리는 고생을 해서도 아니다. 88년 영화를 시작해 연극에서 잔뼈가 굵은 이 배우는 한때 연기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중요한 건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추격자>라는 한편의 영화에는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그간의 행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야, 4885 너지’ 하고 한마디를 할 때, 온전히 연기 하나로만 쌓아온 그의 숨은 내공이 전달된다. 배우가 다른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이렇게 연기만으로 충격을 선사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관객에게 결코 흔치 않은 경험이다. 내년 <거북이 달린다>와 <전우치>의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가 아닌, 그 자체로 이미 순수한 정점의 배우다.

-6관왕이다. 요즘 수상 소감 작성하느라 바쁘니 않나.
=그러게 말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다. 항상 나 자신을 유연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추격자>의 흥행가도로 볼 때 이미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나.
=주연상 후보에 오르겠구나, 그리고 그중 하나 정도는 받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 이상은 생각 안 했다. 이렇게 6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트리플, 크라운 이런 수식어가 붙으니 당황스럽다. 송강호가 샘낼 것 같다. (웃음)

-청룡상과 대한민국영화상에서 20년지기 친구 송강호씨가 직접 트로피를 건네줬다. 샘난다고 하던가.
=자존심 상해서 그런 이야기는 안 하지. 강호가. (웃음) 사실 지난해 수상자이니 올해 강호가 시상을 할 거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친한 걸 아는 사람은 우리가 시상대에 같이 올라 시상하고 수상하는 모습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강호와는 17년 전부터 같이 연극을 하고 연기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다.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릴 스쳐지나갔겠나. 그런데 그때 가장 절친했던 강호랑 내가 살아남아서,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영화제에서 두번이나 만나 수상과 시상을 했다는 게 어마어마한 인연이 닿은 결과다. 삼류소설 같지만 감동적이다.

-그간 송강호 혼자 ‘뜨는 배우’였으니 친구 사이의 괴리감이 해소된 거 아닌가.
=우릴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짠해하더라. 사실 한창 송강호라는 ‘괴물’이 뜰 때 난 연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 5년 정도. 강호는 순풍에 돛단 듯 나가더라. 워낙 자기 관리에 걸출한 배우니까. 난 말 그대로 시청자 입장으로 TV로 시상식 보고 축하한다라고 하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때를 무명의 세월이라고 하는데 난 그냥 내 일을 했을 뿐이다.

-작품 선택이 탁월했다. <타짜>의 짝귀 이후에 웬만한 시나리오는 김윤석에게 가는 시점이었는데 선뜻 신인감독의 작업을 택했다. 그 모험이 오늘의 수상을 낳았다.
=<추격자>는 대사가 너무 좋았다. 이 정도로 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나리오를 200% 이해하고 있는 거다.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순서와 생략만 봐도 이 사람의 생각을 다 알 수 있다. 이런 무지막지한 시나리오를 쓴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정우도 시나리오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더라. 작업해보니 나홍진 감독은 영특함과 철두철미한 준비, 그 속에 굉장한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더라. 그게 다 자신감이었다.

-첫 주연작으로 단숨에 대한민국을 짊어질 배우가 됐다. <추격자>는 촬영하는 동안 고생도 많았던 작품인데 보람이 크겠다.
=처음 만나 “야, 4885 너지?” 하는 장면만 일주일 넘게 찍었다. 그 한 장면이 너무 중요한 장면이라 정말 뭐 이렇게 많이 찍나 하는 생각 안 들 정도였다. 촬영장의 긴장이 팽팽했다. 하정우와 나, 그리고 나홍진 감독까지(웃음). 아이디어도 넘쳐서 밀쳐서 도망갈 거냐, 다른 문으로 도망갈 거냐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매 장면 모두 다 토론해서 찍었다.

-이른바 신인감독과 연륜있는 배우의 기싸움도 대단했겠다.
=사실 그건 크랭크인하기 전에 다 해소됐다. (웃음) 계속 대화하고, 둘이서 여행도 가고. 내가 생각하는 거 다 체크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만약 결론이 안 나면 두 가지를 다 찍자, 그러면 편집할 때 어느 부분이 좋은지 판단이 날 거니까 그런 마음으로 했다. 어머어마하게 찍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과정이다.
=그 과정들이 재밌다. 그렇게 토론 끝에 최종결정은 나홍진 감독이 ‘이렇게 가겠습니다’ 한다. 물론 기다리는 사람들이 괴롭긴 했을 거다. ‘이 시간에 또 어딜 가냐’, 이런 반응이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으슥한 골목에서 내가 나홍진 감독을 팼다 그런 말도 했다. 말도 안된다. 맞고 있을 놈도 아니고. (웃음)

-근 20년간 연극배우로 활동했지만 사실 대중적인 면에서 배우 김윤석의 등장은 갑작스럽다.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로 각인됐다. 같이 사는 부인도 겁먹을 아주 못된 불륜남을 연기했다.
=다행히 와이프가 연극, 뮤지컬 배우라 그냥 내가 뭘 표현하려는지 알고 웃어주더라. 대본을 받고 나서 내가 한번 보여줘야 할 부분이 있구나. 나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싶었다.

-아침드라마의 불륜남은 전형적인 캐릭터 중에서도 최극단이다. 연기로 승부를 하려 한다면 자칫 기피할 만도 하다.
=맞다. 그런데 나는 굉장한 목표지점이 있었다. 바로 그 전형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밥 먹는 장면 하나 가지고도 밥을 실제로 먹으며 말을 하면서 밥알을 씹고, 물도 마시면서 말해보고, 이런 걸 다 해보고 싶었다.

-그런 부분들은 연출자의 디렉팅이나 요구에서 벗어나는 세밀한 부분들이다.
=그렇다. 원, 투, 스리 세대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굉장히 계산을 잘해야 한다. 아무리 디테일하게 연기를 해도 카메라가 다른 쪽 찍고 있으면 아무 소용없지 않나. (웃음) 그런데 PD가 전폭적으로 나를 믿어주었다. 명색이 아침드라마 주인공인데 생판 낯선 얼굴이 나타나서 하희라, 지수원 사이에서 분탕질을 하니 미스캐스팅 아닌가. 그런데 한 30회 정도부터 슬슬 ‘어 이상하다. 왜 더 보고 싶지’ 하면서 이 낯선 인물이 시청자의 마음으로 들어가게 된 거다.

-맞다. 그때 아줌마 시청자를 넘어 화제의 김윤석이 됐다.
=정말 그때 나는 그 나쁜 역할을 하면서도 욕을 얻어먹질 않았다. 어딜 가나 다 나를 좋아했다. 그때가 가장 바쁠 때였다. 아침드라마를 하니 기본으로 주 4회, 5회 촬영이 있었고 <천하장사 마돈나>와 <타짜>, 연극 한편이 있었다. 지옥의 스케줄이었다. 내 생애 가장 술을 적게 마신 시기다.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한번 연기로만 살아가보는 시간이라고. 다행히 평가도 좋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사실 김윤석을 알린 건 낯선 마스크보다 그 무시무시한 목소리였다. 마치 악역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작용한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날 두고 “두루뭉술하게 생겨서 무슨 악역이냐, 날카로움도 없고”, 이렇게 말한다. 악역을 하기 전 내 목소리는 언제나 편한 아저씨 목소리였다. <타짜> 할 때도 당연히 ‘짝귀’를 할 줄 알았고 드라마 <부활>의 ‘강냉이 아저씨’ 때는 드라마 마니아들 사이에서 내 목소리를 ‘천상의 목소리’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은 지옥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들 하지만, 착한 역할을 하면 착하게 들릴 거다.

-그런 발성은 어디서 오나. 연극배우로의 소산인가.
=특별히 연극적이라기보다 목소리 톤 같은 건 내 거다. 내가 살아온 역사들이 내 목소리 하나하나에 다 묻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무서운 연기를 하는 배우가 연기를 그만두려고도 한 적도 있다. 고향 부산에 가서 5년간 두문불출했다. 그때 연기를 아예 접으려고 한 건가.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속성에 대해서 회의가 생겼다. 공연은 필름으로 남는 것도 아니고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회의, 또 내가 추구하는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도 무시하기 힘들더라. 생각 한번 바꾸니까 연기 안 해도 재밌게 살 수 있는 삶인데 왜 이 고생을 하나 싶더라. 그래서 접었다.

-연기 접고 뭘 했나. 안정적인 생계활동을 했나.
=광안리에서 라이브 재즈바를 했었다. 미 8군 할아버지들과 같이 했는데, 와, 난 그건 못하겠더라. 장사를 잘하냐 못하냐 하는 수완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 술을 마시니까, 사람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더라. 어느 순간 내가 입는 옷들을 보니 사이즈가 어마어마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넣었을 때의 아주 보기 싫은 뒤태. 얼굴은 늘 붉고 살은 퉁퉁하니 쪘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때가 30대 초반인데, 거의 반평생 산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접자 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그렇게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주위에서 독촉도 많았겠다.
=강호가 계속 전화가 왔다. 뭐하냐고, 서울 와서 다시 연기하라고 했다. 거절하고 말고를 떠나 내가 스스로 동해야만 움직이는 거니까. 그러다가 문득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건 결국 연기인데 싶더라.

-그럼 다시 제1직업이 연기자가 된 건 언제부터인가.
=2000년쯤. 나도 한번 가보자. 미련없이 해보자 했다. 김민기 선생님과 알고 지내던 사이라 대학로 학전에 가서 공연을 시작했다. 하다보니 영화까지 왔다. 영화 첫 작품은 <베사메무쵸>가 있었는데 그건 단역이었고, ‘저 사람 누구냐’ 정도로 궁금증이 인 건 <범죄의 재구성>부터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가 빛을 봤다. 심지어 충무로에 <거북이 달린다> 시나리오가 화제였다. 도대체 시나리오가 얼마나 좋기에 <추격자>를 한 배우 김윤석이 하겠다고 했냐는 요지다. 현상수배범을 쫓는 시골형사, 이건 <추격자>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가장 피해야 할 선택 아니었나.
=하드웨어만 보면 시골형사라는 점에서 <추격자>와 같고, 탈주범을 쫓는 것도 <추격자>의 연쇄살인범을 쫓는 것과 겹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여자고, 청바지를 즐겨 입고, 머리가 길다. 그래가지고 두 여자를 비교하면 똑같을 리가 있나. 너무 다르다. 그것과 똑같은 거다. <추격자>와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볼 때는 같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어떻게 다른 형사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골 마을에 탈주범이 오면서 일어나는 소동이다. 사건은 그렇다치고, 내가 주목한 건 캐릭터다. 탈주범과 형사 이야기만 사회적인 관계에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모습에 초점을 둔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좀 나쁜 짓도 하면서 적당히 사는 사람. 결코 착하다고 할 수 없는 보통 사람. 그런 모습이 매력적이더라. 이전까지 내가 한번도 하지 않은 역할이다.

-일상에서의 코믹함, 무료한 마을의 시골형사가 주는 소박함은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와도 겹친다. 김윤석이 찾은 시골형사의 모습은 어떤 건가.
=목표지점을 두지 않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이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겠구나 라는 막연한 감이 있었다. 그냥 어떻게 하면 좀더 편안하게, 빨리 퇴근하고, 웬만하면 사람들과 안 부딪히고, 싸우려고도 안하는 그런 성격이다. 이 인물은 그래서 목표지점이 없다.

-예산 지역 형사니 충청도 사투리가 관건이겠다.
=그러니까 그걸 자연스럽게 하자면 거기 가 있는 게 제일 낫다. 숙소에서 밥 먹고 자고 얘기 나누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억양이 들어오고 그게 말로 나오는 거다. 억양을 무작정 따라하려다 보면 죽은말이 된다. 그런 과오를 줄이려면 그 지방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왜 이 지방에선 이 단어를 쓰는지, 왜 도치법을 많이 쓰는지. 그건 삶을 통해서 캐치해야 한다. 말 속에 지방색이 나오는 거다.

-<거북이 달린다>와 겹쳐 <전우치>도 연달아 촬영 중이다. 최동훈 감독과 벌써 세 번째 작업이다.
=신선들을 도와 전우치를 봉인했던 도사 ‘화담’ 역이다. 강동원이 맡은 전우치와 정면 대결하는 거다. 500년을 거슬러서 자기 정체성을 살아가는 사람이니 감정의 흐름을 볼 새도 없을 것 같다. <엑스맨>의 공간 이동처럼 감정도 컷컷 건너뛴다. 겉모습부터 다르다. 살도 많이 빼고 수염도 있다. <타짜>보다 더 무서워지면 어쩌나 걱정이다.

-CG가 많아서 연기를 할 때 감정에도 제약을 받는 것 아닌가.
=근데 CG보다 내 역할은 와이어 액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굉장히 재밌다. 와이어 액션이 말만 거창하지 고도의 장비가 필요없다. 말 그대로 무술팀이 다 직접 당기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줄 하나 매어놓고 연기한다는 건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이 딱딱 맞아들어가야 한 장면이 오케이되는 거다. 고달프지만 그게 값지고 좋다.

-나홍진 감독 작품은 99% 다음에도 하겠다고 했다던데 최동훈 감독 작품도 그런 마음인가? 역할 선정에 인연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둘 다 철저한 준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 감독들과는 언제든 하고 싶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다거나, 나도 역시 당신이라는 감독을 염두에 두고 내 스케줄을 조정한다거나 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말자 했다. 다들 언제든 만날 수 있는데 굳이 같이 하려고 창작을 방해하는 상상력을 방해하는 어떤 짓도 하고 싶지 않다.

-물리적인 나이도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치기어린 이십대가 아니지 않나.
=그렇다. 이제는 다른 색깔로 바뀔 수도 없는 영락없는 나이다.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하던데. 내겐 나도 모르는 나만의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이 무언가에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거고 난 그걸 그대로 따라가는 것밖에 없다. 그게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기성감독의 영화든 신인감독이든 그게 중요하지 않다. 시나리오를 읽어서 뭔가 오는가, 그게 제일 첫 번째 기준이다. 앞으로도 그건 안 변할 거다. 외형적인 부분을 따지다가는 눈이 가려지고 정작 핵심을 못 볼 수 있다. 신인감독의 작품이라는 외적 이유로 <추격자>를 놓친 배우들은 얼마나 배가 아프겠나.

-이제 집에서도 힘주는 가장이 된 건가.
=늦게 장가를 가서 아이들이 아직 일곱살, 네살이다. 아이들은 내가 아무리 많이 상을 받아가지고 가도 전혀 영향이 없다. 손에 뭘 들고 가는가만 보고 있다. 뭐 맛있는 거 사왔나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거다. TV에서 나오는 걸 보고 ‘왜 저길 들어갔냐’고 묻는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조급함은 없나.
=나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도록 항상 나를 맑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니더라 하는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 할 거다.

-어떻게 자신을 맑게 하나.
=내가 맑아지는 순간은 가족과 있을 때다. 내 딸이 일곱살이 되었고 난 사십대고, 부모님은 몇살이 되셨고. 그런 걸 보면서 연기 활동 이외의 나라는 사람의 위치를 알아간다. 아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구나, 이런 것들이 나를 온전히 땅에 발을 딛게 만들어준다. 20년 전처럼 어딘가 자취방 구석에 홀로 앉아 누구의 누구도 아닌 외톨이의 모습으로 꿈을 꾸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적어도 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관심과 여유는 가지려 한다.

-갑작스런 등장으로 대중과 역사를 같이 한 배우가 아니어서 아쉽다. 젊을 때는 더 대단했을 텐데.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내 군대 시절의 사진이다.

-이 정도 미모면 젊은 시절 연애의 달인이었겠다.
=아니다. 난 로맨티스트인데 연극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포스터 붙이고, 예매처 표까지 다 팔아야 하니 어느 여자친구가 붙어 있겠나. 선배들이 자고로 ‘연’자 두개는 같이 못한다고 했다. 연극과 연애.

-완전 꽃미남이다. 이 사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원빈이라도 되나. 과도한 음주가 나를 이렇게 망가지게 한 거다. (웃음)

-연말에는 시상식 축하로 그래도 과도한 음주가 기다린다.
=지금 눈이 와서 <전우치> 오픈 세트가 완전히 뒤덮였다. 그거 녹으면 이제 다시 정신없이 찍어야 한다. 당분간은 <전우치>에 올인해야 한다. 다른 거 생각할 겨를이 없다.

스타일리스트 강미원·의상협찬 J.Press, TOMBOLINI, N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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